* Picante [: 매운]
파라과이의 우리 가족은 한국 음식을 그닥 즐기지 않는다. 내가 요리를 못하는 것도 큰 이유가 되겠으나 ( 사실 이게 가장 큰 이유일수도 있다.) 야심차게 준비했던 신라면 이후로, ' 한국음식 = 매우 매운 음식 = 먹을 만한 음식이 안됨' 이라는 공식이 성립되어서, 우리 가족들은 한국 음식을 해달라고 두번 다시 조르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는 나름 한국인이 사는 가정이다. 내 생각엔 한국 음식에 열광하진 않더라도, 싫어하진 말아야한다. 한국 음식에 대해 트라우마를 준 것도 어찌보면 그 원인이 나에게 있으니 할말은 없지만 말이다. 그래서 저번의 패배 원인을 철저히 분석하여 지난번의 실수(?)를 만회하고자, 등심을 사서 배와 진강장을 넣고 불고기를 대접했다. 그리고 국수 요리를 좋아하는 가족들을 위해 맵지 않은 짜파게티 봉지도 2개나 뜯었다. 이번에는 한국 음식 중에서도 달짝지근한 것들이니, 단 것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파라과죠들이 Rico!!!! Riquisimo!!! (진짜 죽여주게 맛있다!!! )를 연발할 것이다.
< 여기 사람들은 정말 단 것을 좋아한다. 일명 둘쎄 데 레체라고 불리는 액체 카라멜을 그대로 퍼먹으며, 여기서 파는 케이크는 한국 사람 입맛으론 설탕 덩어리이다. 케이크를 보기만 해도 혀 끝에서 설탕 덩어리가 느껴지는 것 같다 -_ㅠ >
그러나 이번에도 내 예상은 철저하기 빗나갔다. 이번에는 음식의 색이 문제였다. 거무틱틱한 색이 그들에게는 그다지 먹음직스럽지 못해보였던 모양이다. 그들은 음식의 뚜껑을 연 순간, 음식의 그 것처럼 얼굴색도 까맣게 변해갔다. 굳이 비유하자면, 산낙지를 처음 먹어보는 아이들의 표정과 같다고 할까? 우리의 배려심 깊은 가족들은, 내가 땀을 뻘뻘흘려가며 요리한 것을 알고 내 눈치를 살피며 맛있다를 연발했지만, 음식은 반 이상 남겼다. 저녁을 위해 아껴먹자는 말도 안되는 이유와 함께.
이렇듯 철저하게 한국 음식에 흥미를 갖지 않은 가족들 덕분에, 다른 단원들은 빠르면 2주안에 해치워버린다던 코이카 격려품이 4달째인 지금도 꽤나 남아 있다. 김도 두 봉지나 남았고, 깻잎 한 통에, 미역국, 북어국 심지어 스팸까지. 언제 한번 마을 사람들 불러놓고 한국 음식 파티라도 한번 해야 겠다.
< 추석 격려품으로 받은 한국 음식들이 아직도 이렇게나 남아 있다. 지금 먹고 있는 고추장, 간장, 참기름까지 합하면 이제 반 정도 해치웠을 뿐이다. 그저께 사무소에서는 설날 격려품이 도착했으니 수령하라는 메일을 보냈다. 음식이 줄고 있는 추세로 보아선, 왠지 이번 설날 격려품으로 다음 추석까지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끊임없이 가족들에게 맛있는 한국 음식을 어필하려고 하였고, 가족들은 할 수 없이 맛만 보는 일상이 계속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도통 매력적인 한국의 맛을 알지 못했고, 이로 인해 웃지 못할 많은 에피소드가 많이 생겼다.(내가 대장금만 되었어도....)
[1]
때는, 처음 이사오던 날. 여기 사는 딸내미는 고맙게도 내 이삿짐 정리를 도와주었다. 원래 내가 가지고 있던 짐에, 선임 단원의 살림 살이까지 더해지니 내 이삿짐은 자동차 트렁크를 채우고, 또 뒷자리를 가득 싣어야 간간히 옮길 정도가 되었다. 임지가 수도에서 꽤 떨어진 지방이라, 그 곳에 가게 되면 한국 음식이 많이 그리워질 것이라는 선배 단원들의 조언에, 나는 그 때 한국 음식을 구할 수 있는 4시장에서 음식 쇼핑을 했었더랬다. 무우말랭이 두팩에, 깻잎에, 라면은 물론이고, 김치까지!!!! 심지어 김치는 그 것을 옮기기 위해 적지 않은 돈을 주고 플라스틱 김치 용기까지 구매했었다.
< 이사 전, 내 집은 커다란 이민용 가방 1개, 이민용 캐리어 가방 하나, 노트북 가방, 메는 가방, 그리고 라면 박스에 이불까지. 영락없는 파라과이 이민자였다. >
내가 방에서 옷 가지며, 컴퓨터며, 책이며 정리하고 있을 때, 그 딸내미는 내가 가져온 주방 용기와 그릇 등의 정리를 도왔다. 그 친구는 냄새에 민감한 코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의 개코 레이더에 내가 고이 밀봉해둔 음식 냄새가 걸린 모양이다. 그녀는 나에게 헐레벌떡 한 가방을 들고 와서는 이것이 뭐냐고 묻더니, 이 말도 안되는 음식들은 상했으니 당장 버리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장장 7시간을 걸쳐서 들고온 값비싼 한국 밑반찬들인데.... 아까움에 방에서 하던 짐정리도 잊고, 이건 맛있는 한국 음식이라고, 안되는 스페인어로 손짓발짓 다해가며 열심히 설명했지만, 그녀의 썩어가는 얼굴을 보는 순간, 차마 같이 먹자는 이야기는 못하고, 이사를 도우러 온 동료단원에게 상당수를 헌납할 수 밖에 없었다.
[2]
그 날 저녁은 집에 아무도 없었다. 아들내미는 여자친구를 만나러 갔고, 딸내미는 친구들과 친구집에서 영화를 본다고 했다. 그리고 홈스테이 마마는 어디로 갔는지 연락조차 되지 않았다. 시간은 흘러 9시가 되었고, 내 배는 굶주림에 비명을 질렀다. 결국 기다리다 못해 저녁을 준비하기로 결심한 나.
평소에 눈치보느라 먹지 못했던 신라면을 오늘의 스페셜한 메뉴로 선정했다. 물을 올리고, 스프를 뿌리는데, 분발스프가 여기저기 튀어도 그냥 입에선 룰루랄라 노래가 나왔다. 라면을 넣고,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며 계란도 넣었다. 행여나 요리 중에 가족들이 올까봐 가끔씩 밖에 나가 망을 보는 것은 기본. 후딱 먹어치우고 설겆이까지 깨끗이 하면 완전 범죄가 될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 배고플 때 먹는 음식이라던데. 배고플 때 몰래 먹는 음식이라면 그 맛은 천상의 맛이리라. 3년 같은 3분이 흐르고, 라면이 완성되었다. 점심마저 시원치 않게 먹었던 탓에, 배가 엄청 고팠는데, 혹시나 가족이 그 사이에 올까 걱정이 되어, 라면을 게 눈 감추듯 내 목구멍에 국물까지 후다닥 들이부었다. (아마 흡입시간과 조리시간이 비슷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그리고 평소에는 물을 아낀다고 설겆이도 못하게 하던 마마 몰래, 물도 마음껏 쓰면서 깨끗하게 냄비와 포크를 씻었다.
그리고 완벽하게 증거를 인멸했다고 스스로 뿌듯해 하며, 내 방에서 여유롭게 영화 한편을 시청하려는데, 밖에 오토바이 소리가 났다. 딸내미가 도착한 것이다. 이런 환상의 타이밍이!!! 조금만 늦었으면 나의 라면범죄는 꼼짝없이 들켰으리라. 딸내미가 집에 들어오면 나한테 밥먹었냐고 먼저 묻겠지? 밥을 먹었다고 할까? 아직 먹지 않았다고 할까? 알리바이를 위해 이것저것을 생각하는데, 현관문 소리가 열리자마자, 딸내미가 우렁차게 재채기를 시작하더니, 내 이름을 미친듯이 부르기 시작했다.
- 조안!!! 조안!!! 조안!!!!
난 갑작스런 외침에 쥐라도 나타난게 아닌가 싶어 조심스럽게 나갔는데, 딸내미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도대체 무엇을 해먹은거냐며 재채기를 계속 해댄다. 그리고 그녀는 집 안에 문이란 문은 다 열고, 선풍기란 선풍기는 다 켜더니 밖에 산책을 나가겠다며 서둘러 나갔다.
그렇다. 딸내미는 20분전의 신라면 후추 냄새까지도 맡는 개코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된통 딸내미의 징징거림을 듣고, 그 후로 한동안 한국 음식을 해먹는 것을 포기했다. 집에 아무도 없을때, 너무 먹고 싶을 경우에만 용기를 내어 라면을 끓였으며, 요리는 짧은 시간내에 후다닥 해치워버리고, 음식은 방 책상에서 먹었다. 그리고, 요리 후에는 주방에 혹시나 한국 요리 냄새가 남아 있을까 공기청정제를 뿌리는 등 치밀하고도 꼼꼼하게 행동했다.
< 미친듯이 한국 음식이 그리웠던 날. 중국 음식점이 근처 도시에 있다는 소리를 듣고, 자전거로 냅다 찾아갔다. 자전거를 타고, 40도를 오르내리는 날씨 속에 모랫바람을 헤쳐가며 2시간 반만에 도착한 그 곳. 고생한 만큼, 맛도 있고 가격도 적당해서 좋았지만, 두번 다시 갈 자신은 없다. 왜냐하면 그 날 밥먹고 돌아오는 길에 자전거가 펑크도 나고, 길도 잃어 무려 집까지 10시간이나 걸렸기 때문이다. 진짜 죽을뻔했다.>
[3]
그 날은 유난히 날씨가 더웠다. 매콤하고 시원한 무엇이 간절히 땡기는 날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얼마 전 수도에서 사온 비빔면이 나에겐 있었고, 나는 그 것을 그 날 저녁 메뉴로 정했다. 새콤달콤한 비빔면의 맛을 우리 가족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나. 마침, 집에서 떼레레를 마시던 마마를 이 비빔면 향연에 초대했다. 신라면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던 터라 한사코 거절하던 그녀에게, 이번에는 다르다며 기어코 주방 책상에 앉혔다. 그리고 수도에서 가져온 비싼 것이니, 나중에 맛있다고 더 달라고 해도 없으니 이번에 많이 먹어둬야 한다는 자신감이에 가득찬 권유까지.
물을 끓이고, 면을 넣고, 3분이 흐르고...
면을 시원한 물에 씻어야 하는데 채가 없다. 뭐 대충 포크로 걸러서 하지뭐 하면서 찬물에 면을 헹구기 시작하는데, 한국인이면 모두가 공감하듯이 이 때, 얼마나 시원하게 면을 잘 헹구는가가 이 음식의 맛을 좌우한다. 근데 그 사실을 모를 뿐더러, 뼛 속까지 차코사람이었던 홈스테이 마마는 면을 헹구던 물이 무지하게 아까웠던 모양이다. 내 음식 행태를 보더니, 이제 그만 헹궈도 되지 않냐며 물을 아껴야 한다고 등 뒤에서 또 한번 잔소리를 늘어놓으신다.
결국 면은 밍숭맹숭한 온도의 물로 한 두번 헹구다 끝났고, 면에는 온기가 지극히 남게 되었다. 그리고 비빔면 액정스프를 넣고 비비는데.... 맛있을리가......................................................
없.다.
그 날 이후, 5개나 사온 비빔면을 전부 따뜻하게 호호불어가며 먹을 수 밖에 없었다. 물을 아껴야 한다는 절규어린 마마의 외침 덕분이라....이게 차코인의 비애라면 또 하나의 비애다. 한동안 수도에서 비빔면은 쳐다 보지도 않았다.
홈스테이 5개월째인 지금까지도 우리 가족은 한국 음식에 서툴다. 하지만 밀라네사에 고추장을 발라먹고, 비빔면 냄비에 기꺼이 포크를 집어 넣으며, 웃음을 지을만큼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 내가 이 곳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듯, 그들도 나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당당하게 주방에서 한국 요리를 조금씩 하고 있다. 다행스럽고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비싼 생라면을 과자처럼 오독오독 씹어 먹어치우는 있는 홈스테이 마마가 조금 염려스럽긴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천천히 마음을 여는 가족들이 사랑스럽다. ( 아직 개코 딸내미는 좀.....)
돌아가기 직전까지 조금씩 조금씩 한국 음식에 빠져들게 하는 전략을 짜고 있다. 목표는 돌아가는 그 날, 다 같이 땀뻘뻘 흘리며 신라면 국물에 밥말아 먹기. 지금은 여기 차코에서 물 찾기보다 달성하기 어렵겠지만,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그들도 나와 같이 2년이나 있으면, 밥말아 먹기까진 무리더라도 신라면 국물 한 그릇 시원하게 비울수 있지 않을까?
< 할머니. 할머니댁에 가면 언제나 맛있는 파라과이 음식을 주신다. 몇몇은 아직도 온몸에 전율이 일만큼 입에서부터 필사적으로 거부하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음식점을 열어도 될 만큼 경쟁력이 있다. 할머니를 위해 한국 요리를 대접하고 싶은데....지금은 걱정부터 앞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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