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차코

Carta [: 편지를 통해 마음나누기 ] 한국에서 서류봉투가 하나 날라왔다. 주구장창 2주에 걸쳐 온 서류봉투에는 고사리 손으로 쓴 것이 분명해 보이는 아이들의 편지가 있었다. 서류 봉투에는 보니, 2주전에 내 친구가 쓴 것이 분명한 학교 이름이 적혀 있었다. - 아, 드디어 왔구나. 우리 아이들하고 진한 우정을 나눌 편지가 도착했다. 때는 작년, 운동장에서 한가롭게 애들 축구하는 것을 구경하고 있을 때였다. 축구를 하다 지친 아이들은 어느 샌가 삼삼오오 내 주위로 모여들었었는데, 그 중 하나가 나에게 조용히 살펴보더니 말을 걸었다. ' 선생님, 선생님 나라는 무슨 언어를 써요? ' - 한국어. 그냥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었는데, 아이들 사이에서는 작은 탄성이 나왔다. ' 한번 말해보세요! 한번 말해보세요! ' 못이기는 척 간단한 인사말과, 좋아.. 더보기
hormiga [: 개미와의 전쟁] 집에 개미가 들끓었다. 뭐 개미가 이렇게 군단으로 다니는 건 하루 이틀은 아니었지만, 방에 개미 줄에 폭팔적으로 늘어나니 이건 뭐, 말 그대로 개미의 계절이다. 그들 덕분에 집에 바퀴벌레를 본 적이 여태껏 딱 2번밖에 없었다는 건 정말 감사하고 감사한 일이지만, 이 녀석들이 바퀴벌레가 없다고 내 발가락 고기까지 탐을 내니 용서할 수 없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우리 집 홈스테이 마마는 모든 것에 뜨랑낄로? 하다. 사실 모든 것에 뜨랑낄로하진 않고, 엄청나게 사소한 것은 불같은 남미 여자 기질이 나오지만, 진짜 신경써야 할 일엔 차코 하늘 구름 마냥 평온하다. 그에 대한 한 일화로 집에 전갈이 나온 적이 있었다. 뭐 지역 자체가 사막이니, 전갈이 나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겠지만, 침실까지 전갈이.. 더보기
Mapa mundial [: 내가 세계지도를 산 이유] 어릴 때부터 내 방엔 세계지도가 있었다. 나라별로 알록달록하게 나눠진 세계지도도 있었고, 등고선에 따라 색이 나눠진 좀 더 현실적인 세계지도도 있었다. 나는 세계지도 보는 것을 너무 좋아했다. 뉴스에서 나오는 나라가 어디에 붙어있는지, 그 나라엔 무엇이 있는지. 넓은 바다가 있는지 높은 산이 있는지. 장엄한 사막이 있는지 아니면 신비한 빙하가 있는지. 지도를 보는 것은 어린 나에게 신나는 탐험이었고, 또한 꿈이었다. 지도 한창을 펼쳐놓고 마치 내 세상인 것마냥 좋아하던 그 때. 친구와 지도를 앞에 놓고, 이 나라에 꼭 여행가기라, 이 나라에서 꼭 친구를 사귀어 보리라, 그리고 저 나라에서는 꼭 살아보리라 원대한 포부를 펼쳐보던 그 때. 나는 그렇게 꿈을 꾸며 살아왔다. 비롯 모든 것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더보기
Bibliotecario [: 우리 도서관은 지금 사서모집중] - 선생님, 아직도 사서 뽑아요? ' 응, 당근이지! 너 사서 한번 해보게? ' - 네, 근데 사서되면 뭐 하면 되요? ' 응 별거 없어, 그냥 도서관 청소 조금 하는 것과, 사람들 오면 조용히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도서관을 관리하는 것? 등등 ' 도서관 운영의 지속성을 위한, 동네방네 도서관 사서 모집 방을 붙였더니, 여기저기서 문의가 들어오고 있다. 뭐 대부분은 우리 학교 고학년 학생들이지만, 오히려 자주, 가깝게 볼 수 있으니 차라리 다행이지 않을까 싶다. 저번 달 20일부터, 모집을 시작한 도서관 사서도우미 모집은 3주가 지난 지금, 문의자가 수십명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정식으로 신청한 사람은? 두둥. 놀라지 마시라. 3명. 적다고? 모르시는 말씀. 어디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보다, 밖에 공차고.. 더보기
Capacitación [: 지역 음악 교사 양성 프로젝트] 교사 연수를 시작했다. 연수라고 해서 뭐 거창한 것은 아니고, 음악 교수법을 일주일에 한번 씩 선생님들과 나누기로 한 것이다. 목적은 이 마을의 음악 교육 지속성의 확보, 그를 위한 음악 교사 양성되겠다. 저번에도 이야기 했다 시피, 이 마을에는 제대로 된 음악 교사, 음악 수업이 없다. 그래서 과거에는 외부 인사에 의해 행해지는 간헐적인 서비스에 의지해왔다. 당연히 복불복으로 운이 나쁘면. 일생 통틀어 음악 수업을 한 번 받아보지 못하고 졸업하게 되는 웃지 못할 일도 나타난다. 예술 교육은 그 혜택을 받는 이로 하여금, 좀 더 부드럽고, 바른 인성과, 창의성을 가지도록 한다. 예술 교육의 부재는 확실히 큰 문제이다. 지금은 내가 이렇게 우리 학교의 음악 교육을 담당하고 있지만, 내가 담당하고 있는 아이.. 더보기
Tragedia [: 아무도 없어도 학교를 가요] - 응? 뭐라고? 오늘은 수업이 없다고? 아무도 없는 텅빈 운동장에서, 수화기 너머로 오늘은 학교 일정상 수업이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던 오늘의 일정. 무(無). 한창은 왁자지껄해야 할 운동장이 이상하리 만큼 조용하고, 아무리 기다려도 선생님은 커녕, 학생 하나 오지 않자 이상하게 느낀 내가 기관장과 통화 후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 때, 때 마침 불어온 모래 바람을 정면으로 맞은 나의 모습이란...처량... 주인 잃은 강아지가 따로 없다. 이런 일이 비단 오늘 만의 일은 아니다. 지난 1년간 살아오면서, 학교 일정을 몰라 헛걸음을 한 적이 몇 번이던가. 집이 가까운 것도 아니고 무려 왕복 1시간 반인데... 어느 누구하나 변경된 학교 일정을 먼저 알려준 적이 없다. 하루는 교사 연.. 더보기
[:이어지는 이야기[7] ' 조안~ 까페 꼬레아노 없어? ' - 없어. 집에서도, ' 조안 선생님, 오늘 날씨가 쌀쌀한데 커피가 땡기지 않나요? ' - 그러네요. ' 물 올릴까요? 까페 꼬레아노 마셔요. ' - 저번에 드린게 마지막 것이었어요. 학교에서도, ' 맥주 두 캔에, 프링글스 하나 3만과라니입니다. ' - 여기 있어요. ' 그나저나, 저번에 나한테 줬던 그 까페 있잖아요? ' - 뭐요? ' 까페 꼬레아노, 그거 어디서 살 수 있어요? ' 학교 앞 구멍가게에서도, - 아순시온 가는 밤10 차표 하나 줘요. ' 오오 이번에 아순시온 가면, 내 선물도 좀 사와 ' - 무슨 선물? 하하하 ' 저번에 준 까페. 심지어, 동네 터미널에서도, 까페꼬레아노 까페꼬레아노 맥심 커피 열풍. 아, 내가 괜한 짓을 한 거 아닌가 모르겠네. .. 더보기
Votacion [: 홈스테이 마마에게 선거란?] ' 아, 메니큐어 색깔이 계속 마음에 걸리네... ' 밤 11시. 고요한 차꼬의 밤의 정적이 깨졌다. 옷을 입었다 벗었다, 매니큐어를 발랐다 지웠다, 립글로즈를 집었다 내려놓았다. 왔다갔다 왔다갔다. 후다닥. 후다닥. 야밤에 체조라도 하시는 것처럼 온 집을 휘젓고 다니시는 이 분은 다름 아닌 홈스테이 마마. 풀벌레 소리에 조용히 음악을 감상하려 했었는데, 정신이 사납다. - 오늘 이 늦은 시간에 파티라도 가요? 왜 이렇게 안절부절 못해요? 보다 못한 내가 조금은 뿔이 나서, 그녀에게 묻자, 그녀는 한 껏 멋을 부리며, 내 앞에 또각또각 오더니, 자신의 손가락에 칠해진 하늘색 매니큐어를 한번 더 도도하게 보며, 이렇게 대답했다. ' 내일 선거 있잖아. 거기 자원 봉사하기로 했어.' 공화국을 표방하는 파라과.. 더보기
Codigo [: 도서관 도서 분류 시스템 구축 완료 보고! :)] 드디어 장장 2주가 넘게 날 도서관에 살게 했던, 도서관 분류 시스템 구축이 완료되었다. 처음에 구상했던 한국식 십진분류법이랑은 조금 거리가 생겼지만, 우리 도서관의 규모와 현지인들의 문화에 맞게 개량된 새롭게 도입된 이 시스템이 더 효과적으로 정착될 것 같아 기대가 된다. 도서의 카테고리는 한국의 십진분류법과 거진 비슷하다. 왜냐하면 초기에 분류할 때 있어서 한국의 십진분류법을 가장 많이 참고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도서관이 가지고 있는 책 종류와, 그에 맞는 도서수에 따라 새롭게 카테고리를 생성시키거나, 카테고리끼리 합치는 방법을 썼다.그래서 만들어 진 카테고리는 크게 12개. 한국의 그 것과는 확연히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도서관이 가지고 있는 도서수가 많은 역사와 지리는 두 개의 카테고리로 분.. 더보기
Recuperacion [: 뎅게 그 이후] * Recuperacion [: 회복] 뎅게로 한 동안 고생하다. 드디어 오랜만에 학교로 출근하는 날이다. 근 한달만에 메씨 등에 타서 페달을 밟아 본다. 이게 얼마만인지. 반쯤 나가서 5살짜리 꼬맹이 발이나 담을 수 있을 것 같은 오른쪽 페달도 오늘따라 왠지 사뿐하다.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서 그런가? 아님 아직까지도 혈소판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은 것일까? 걸어서 50분 걸리는 출근길이 무려 자전거로 1시간이 걸렸다. 아직까진 페달을 밟는 것이 조금은 힘이 부쳐, 천천히 탔는데, 이 또한 시간이 지나니 힘들어서 가다 멈췄다. 가다 멈췄다를 반복했다. 설상가상으로 어젯밤 내린 비로 인해 길도 엉망이라, 이번 출근길은 시간이 더 걸린 것 같다. 겨우겨우 학교에 도착하니 온 몸이 땀범벅에 숨이 가빠온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