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문화의 언어를 완벽하게 습득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언어 학습자가 배우려고 하는 문화권이 단일 언어를 가지지 않고, 두 세가지의 언어가 난립하여 짬뽕 비빔밥처럼 뒤섞여서 쓰인다면 더더욱 그렇다.
파라과이는 두 개의 공식 언어가 있다. 남미의 거의 모든 국가가 그러하듯이 스페인어와, 이 지방의 토속언어인 과라이어. (브라질은 포루투칼어를 사용한다.)
파라과이는 두 공식언어를 어느 한 쪽으로 치우지지 않고, 두 가지를 다 병행해서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를 현지인들은 좆빠라라고 말한다. 이 좆빠라는 과라니어에 스페인어 단어 혹은 스페인어에 과라니어 단어를 섞어쓰는 형태의 특이한 회화체인데, 아주 자연스러운 형태로 녹아들어 사용하기 때문에 두 언어 중 하나라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어디서 부터 스페인어고 어디서부터 과라니어인지 구별도 할 수없다. 당연히 이를 구사하는 파라과죠들의 대화를 이해하기란 굉장히 까다롭다.
< 자, 그럼 문제. 여기서 스페인어와 과라니어를 구분해 보시오. 사실 수학문제이지만-_ㅠ >
차코, 필라델피아. 내가 살고 있는 이 도시는 그런 파라과이 내에서도 독특한 문화를 가진 도시이다. 이 도시는 메노니따라고 불리는 독일계 이주민들이 세운 도시인데, 이 지역의 이질적인 문화는 이들의 영향이 매우 크다. 여기에 원래 이 지방에서 꾸준히 거주하고 있던 인디오들, 그리고 일자리를 찾아 온 파라과죠가 더해져 필라델피아는 한 껏 차별화된 문화를 뽑낸다.
다양한 문화만큼이나 이 지역에서 사용된 언어 문화 또한 매우 다양하다. 먼저, 파라과이 공식언어인 스페인어와 과라니어는 말할 것도 없고, 도시의 주류인 메노니따들의 언어인 독일어, 그리고 필라델피아에서 거주하는 인디오들의 언어인 니바체(니바끌레족의 언어)와 아조레오(아조레오족의 언어)까지, 이게 다 인구 만명도 채 되지 않은 도시에서 사용되는 언어라니 조잡하게 느껴지기 까지 하다.
< 여기 바닥에 적힌 언어 수가 많을까, 우리 동네에 난무하는 언어 수가 많을까. >
나는 여기서 스페인어를 중심으로 공부하고 있다. 생활하면서 좀 더 원활한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과라니어도, 독일어도 배워야 하겠지만 지금 내 머리 상태로 보았을 때 한번에 여러가지 언어를 공부하는 것은 굉장히 현실적이지 못한 선택안이다. 난 내 주제를 일찍 파악했다. 한 우물만 파자. 그래서 난 오늘도 독일어와 과라니어를 배우라는 홈스테이 마마의 잔소리를 귓등으로 듣는다.
그러나 파견된 지 8개월이 넘은 내 스페인어는 아직도 유치원생 수준이다. 나름 한국에서 고등교육을 받고, 이 곳에 나눔을 실천하려고 온 사람인데, 입만 열면 우쭈쭈 어린이가 되어버리니 너무나도 부끄럽다. 게다가 언어를 잘하고 싶다는 욕심은 앞선데, 맹한 성격때문에 스페인어를 급하게 사용하니, 파라과죠들과 대화를 하면 귀까지 빨개질 시트콤같은 실수가 항상 생긴다.
< 가끔 내가 스페인어를 배우는 것보다 애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주는 게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렇게 된다면, 이 필라델피아에 공식언어가 한 개 더 늘어나는 거겠지 :) >
먼저 에피소드 [1] 우물가서 숭늉찾기
더위에 지쳐 에어컨 바람을 시원하게 쐬어 보고자 마을에서 가장 좋다는 식당을 찾았더랬다. 거기는 피자가 유명한 식당이었는데, 배고픈 김에 피자도 좀 먹어보자 싶어서, 음식을 주문하고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그러다가 주문한 음식이 나왔고, 나는 손을 씻고 싶어서 물수건을 부탁하려고 했다. 그러나 물수건은 이 곳에서 그리 흔한 아이템이 아니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자 마음을 먹었고, 조심스럽게 화장실이 어디 있는지 점원에게 물어보았다.
' 돈 데 에쓰다 싸나오리오? '
그리고 나름 유창했다고 뿌듯해 하며 점원의 답변을 기다리는데, 점원은 굉장히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그러고는 두 손을 만지작 만지작 거리며 싸나오리오는 이 곳에 없다고 말하였다. 아니 화장실이 없는 식당이라니. 말이 되는가? 화장실이 없는 식당이라니.... 나는 우리 도시에서 가장 좋은 식당 중 하나 인 이 곳에 화장실이 없다는 말을 도저히 내 상식으론 있을 수가 없었고, 순간 내가 외국인이라서 놀리는 건가 하는 못된 생각도 조금 했었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그 친구는 너무나도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나는 한숨을 내쉬며 결국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없다는 데 어떡하겠는가. 지금 당장 만들라고 할 수도 없고.. 그리고 쿨하게 손 좀 안씻으면 어때? 피자는 손 맛이지! 하면서 내 자리로 돌아가려는데, 이 때 저~기서 어느 한 손님이 화장실로 보이는 곳에서 상쾌한 표정을 지으며 나오는 것이 아닌가.....!!!!
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 나는 조금은 분한 마음에 점원에게 저 손님이 나온 저 곳은 어디냐고 물었다. 화장실!이라고 말하면 내가 아까 물어볼 땐 없다고 하지 않았냐고라며 따지기 위해서.... 하지만 그의 대답은 너무나도 명확하고 당당했다...아니 거침이 없었다... 그 점원은 활짝 웃으면서
- 싸니따리오!!! (화장실)
라고 말해주었다.
그렇다. 난 싸이따리오(화장실) 대신 싸나오리오(당근) 을 찾았던 것이다. 우리 친철한 점원은 밑도 끝도 없이 당근을 찾던 나에게 당황하면서도 미안한 표정으로 당근은 여기 없다고 말해준 것이고, 그의 눈엔 앞에 서 있는 화장실 급한 이 작자가 피자에 당근피클을 찾던 요상한 꼬레아노이였던 것이다.
< 실수를 해도, 사고를 쳐도, 마냥 좋다. 나는 파라과이의 차께뇨이다 :) >
그리고 에피소드 [2] 개인의 취향.
여기 파라과죠들과 있으면서, 어느 파라과이 음식을 좋아하냐고 질문을 받을 때가 많다. 난 한국에서도 삼겹살과 채끝살을 좋아하던 육식남이었기에 여기서도 아사도 ( 소고기 바베큐 ) 요리가 좋다고 늘 말해왔었다.
그 날도 똑같았다. 나에게 파라과이 음식 중 무엇이 좋냐고 물었고, 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담백하고 쿨하게 아사도! 하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 때는 그 답변이 그 파라과죠에게 그렇게 만족스럽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는 나에게 파라과이에는 다양한 음식이 있으며, 너도 아사도만 먹지 말고, 다양한 음식을 먹고 즐겨야 한다고 훈수를 놓았다. 나는 파라과이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리 많은 음식은 접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파라과죠들이 평소에 잘 먹는 음식들은 거진 다 접해본 것 같다고 말하며 그를 달랬다. (내가 왜 그를 달래야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는 내 얘기를 잘 듣더니, 그럼 무슨 음식을 먹어보았냐고 나에게 한결 부드러운 눈빛으로 물어보았다. 나는 이 때가 이쁨 받을 수 있는 타이밍이다 싶어 내가 콩알만큼이라도 먹어본 파라과이 음식은 다 나열했는데, 사건은 여기서 터졌다.
- 조안, 너 파라과이 음식 중에 이 때까지 무엇 무엇 먹어보았어?
' 쏘빠 빠라과쟈, 뇨끼쓰, 쬬리쏘 아싸도, 아싸디또, 치빠, 꼬씨도, 떼레레..... '
나는 알고 있는 파라과이 음식을 쥐어짜면서 열심히 대답했다.
' 그리고 미씨오네라!!!! 특히 난 미씨오네라 먹는 거 정말 좋아해! 아싸도 같아! '
그는 내가 내뱉는 파라과이 음식 이름을 하나하나 따라하면서 흐뭇하게 웃었다. 근데 갑자기 내가 미씨오네라는 최고의 음식이라며 칭찬을 하자, 그는 미씨오네라? 하면서 깜짝 놀라더니 얼굴이 붉어지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배꼽이 빠져라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나는 영문을 몰라 멍하게 있었는데, 그 때 나는 내가 마지막에 말한 그 미씨오네라 라는 음식이 외국인이 좋아하기에 너무 서민적이거나 의외의 음식이라 그러려니 했다. 우리도 머리 노란 외국인이 한국 음식 중 뭐가 제일 좋나요? 했을 때 '번데기요!!' 라고 하면 저렇게 반응하지 않겠나 싶었던 것이다. 그는 한창을 눈물을 흘리면서 웃더니 나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 조안 너 진짜 미씨오네라 먹는 걸 좋아해?
' 응, 엄청 좋아하지. 우리 집 홈스테이 마마도 가끔 해주는 걸? 난 그거 두 세개는 거뜬히 먹어! '
내가 말하던 그 음식은 살짝 튀김 옷을 입힌 소고기 요리로 한국의 돈까스와 외향적으로 비슷한 음식이었다. 파라과죠들도 많이 먹고, 향료가 거의 들어가지 않아 외국인이 정말 부담없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그런데 계속해서 저렇게 짖꿏게 꼬리에 꼬리를 물어 질문을 하니, 내가 뭘 잘못했나 싶어 점점 궁금해졌다.
' 왜 그랴? 넌 안 좋아해? 아님 외국인이 이 것을 좋아해서 의외인거야? '
- 아니, 나도 좋아하지. 난 그 미씨오네라 중에서 장을 좋아해. 그런데 먹는 건 그리 좋아하지 않아.
그는 그렇게 말하곤 또 한번 배꼽이 빠져라 웃어대었다. 그러다 순간! 미씨오네라 장이 뜻하는 것을 눈치 챈 순간 모든 걸 깨달았다. 그렇다. 여기서 미씨오네라 장은 차코 지역에서 선교하고 계시는 장 선교사님을 일컫는 말이었다. 미씨오네라라는 단어는 바로 '선교사'를 뜻하는 말이었던 것이다. 내가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있던 음식은 밀라네사라는 비슷하면서도 완전히 다른 단어였고....
그런지도 모르고, 선교사님을 집에서 두 세개를 거뜬히 먹는 다는 둥, 간장에 찍어먹으면 맛있다는 둥, 집에서 고추장에도 발라먹는다는 둥 이야기를 해대었으니 앞의 파라과죠가 안 웃고는 베길 수 없었을 것이다. 말 한마디가 특이하면서도 잔인한 음식 취향을 가진 꼬레아노를 만드는 순간이었다.
언어로 인해 생긴 에피소드는 이 외에도 엄청나게 많지만, 관대한 파라과이인들 덕분에 하하호호 웃으면서 잘 넘어갔다. 물론 아직까지도 저 식인종 사건을 기억하며, 놀려대는 선생님들도 몇몇 있으나, 다 친해지자고 하는 이야기라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내가 리엑션도 해주며 즐겁게 보낸다.
하지만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정말로 아쉬울 때가 있다. 이 것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공감을 얻으며 협력을 이끌어낼 때가 더욱 그렇다. 내가 가지고 있는 전문성, 그리고 열의 그리고 프로젝트의 당위성에 대해서 한국어로 하면 더 잘 표현할 수 있을텐데... 라고 생각해 본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돌아가는 그 날까지, 스페인어 공부를 손에서 놓지 말아야 겠다. 한국에서 의기양양하게 스페인어를 마스터하겠다며 사온, 하지만 지금은 책장 한 구석에 쳐박혀 있는 류덕룡씨의 종합 기초 스페인어 책을 보며, 그 동안을 반성한다. 다시 화이팅하자 :)
< 책 한 권없는 너무나 깨끗한 내 책상. 스페인어 정복을 위해 위풍당당했던 그 놀라운 기세는 8개월차 인 지금 차코 모래바람과 함께 멀리 날아가 버렸다. 그 기세를 다시 돌려놓기 위해, 책상 위에 책 부터 올려놓아야 겠다 :) >
< 같은 온 동기들과 함께! 마지막까지 화이팅!!! :-) >
'아름다운 후안' 카테고리의 다른 글
Picante [: 제발 한입만 먹어주세요 네에~?! (2) | 2013.02.01 |
---|---|
Casanova [: 아줌마들을 홀리는 마성의 한국인? (6) | 2013.01.27 |
Agua [: 늘 비가 그리운 땅] (6) | 2012.12.26 |
Mil gs [: 궁금해요? 궁금하면 천원] (4) | 2012.12.13 |
[:이어지는 이야기[3] (0) | 2012.12.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