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s [: 과라니(파라과이 화폐단위)]
궁금해요?
궁금하면 오백원.
한국에서 꽤나 유행하는 이 우스꽝스러운 대사는 개그콘서트라는 한국의 유명 개그프로그램에서 허경환이라는 개그맨이 거지 분장을 하고 나오는 코너의 단골 멘트이다. 그가 입고있는 알록달록한 옷, 능청스러운 연기로 이 유행어가 나올 때 사람들은 어느 때보다도 큰 웃음을 터트린다.
근데 이 멘트를 실제로 내 생활 주변에서 들을 때 기분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그 마져도 어린아이에게서 들었을때는 그 죄스러움이 배가 된다.
아순시온에 내려가면 자주 머무르는 호텔이 있는데, 그 호텔 주변에는 Cerro Cora 라는 일방통행 길이 있다. 그 길은 유명 쇼핑센터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는 버스정류장이 있어서 자주 이용하는 곳인데, 치안이 좋지 않기로 유명한 센트로와 4시장 근처에 위치한 길이라, 행동할 때 늘 주의를 요한다.
내가 그 아이를 처음 만난 건, 한달 전 날씨가 꽤나 우중충하던 어느 날이었다. 나는 수도에 올 때마다 유명 쇼핑센터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물건 구경하는 것들을 즐겼는데, 그 날도 그 곳에 가기 위해 음악을 들으며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비가 막 그쳤던 터라 날씨는 선선했고, 거리는 한산했던 그 시간,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한 아이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까무잡잡한 초콜릿색 피부에, 까만 짧은 머리의 그 소년. 그는 왠지 모를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는데, 손에 무언가를 계속 만지작 만지작 거렸다.
Dame un mil ( 천원만 줘 )
옆에 인기척이 느껴져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리니, 그 소년은 내 옆에 멀뚱멀뚱서서 나에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음악을 듣고 있어서 아이의 말을 못 들었던 나는 나 또한 그 소년을 바라보며 멍청하게 서 있었고, 그 아이는 답답한 듯이 다시 한번, 하지만 이번에는 좀 더 크게 나에게 소리쳤다.
Dame un mil ( 천원만 달라고 )
그제서야 상황이 파악이 된 나는, 주섬주섬 호주머니를 뒤적거렸고, 그 모습을 보는 아이의 눈동자는 기대에 가득차서 내 손에 쥐어질 동전을 쫓았다. 그러나 미안하게도 내 주머니에는 내가 지금 당장 써야할 버스비 외에는 동전이 있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 지갑에 있는 돈을 꺼내기에는 주변 환경이 치안이 신경쓰여 굉장히 망설여졌다.
그렇게 시간이 계속 흘러가고, 나는 미안하다고 말하며, 양해를 구하고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상하리 만큼 그 시간은 평소에 자주 오던 버스도 오지 않았다. 줄 돈은 없으나, 자리를 피할 방도도 마땅히 없고. 서로에게 아니 나에게 굉장히 불편한 상황이 지속되었다.
소년은 끈질겼다. 내가 돈을 줄 의사가 없음을 알면서도 괜한 기대감에 끊임없이 말을 걸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처음부터 그렇게 쉽게 돈을 주지 않을 것을 안 마냥, 사람 민망하게 이런 저런 이야기까지 섞어가며 돈을 애원한다. 내가 왠지 모를 죄스러움에 아까부터 계속 묵비권을 행사하지만, 그 소년은 장기전을 시작한 듯이 내 주변을 기웃기웃거리며 자리를 뜰 생각을 하지 않는다. 돈 한푼 쥐어줄 수 없는 미안함과 더불어 왜 이 소년이 여기서 이런 일을 하고 있어야 하는지 분노가 치민다. 그리고 괜히 그 소년이 궁금해진다.
그렇게 10분정도 흘렀을까.. 나는 아까부터 옆에서 같이 어색한 침묵을 지키고 있던 그 소년에서 말을 걸었다.
- 너 왜 천원이 필요한거야?
' 나 오늘 한 끼도 못먹었어. 그걸로 엔빠나다(만두) 사먹을꺼야 '
누구랑 사는지. 어디에서 사는지. 아빠는 뭐하는지. 엄마는 어딨는지. 궁금한 게 수십 개였지만, 한 끼도 먹지 못했다는 그 대답 한 마디에 다음 질문을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엊그제 비가 와서 오물이 여기저기 있는 이 거리에서 이 소년은 오늘 하루 저 여린 맨발로 여기저기 돌아다녔을 것이다. 머리는 언제 감았는지 덕지덕지 떡져있고, 손과 발은 물 구경이나 해보았는지 꾀죄죄하다. 물론 입고 있는 옷도 여기저기 구멍에, 먼지에 꼬릿꼬릿하다. 가슴 깊이 또 한번 연민이 인다.
그러다, 아까부터 손으로는 만지작 거리고 있던 물건에 눈길이 갔다. 무엇인가 하고 유심히 살펴보니, 뾰쬭하고도 넓덕한 철사 덩어리다. 왜 저걸?.......................
순간, 한 끼도 못 먹었다는 말에 괜시리 가여워져서 지갑을 꺼내려던 손이 갑자기 그 아이가 들고 있는 철사에 움찔했다. 머릿 속이 갑자기 복잡해진다. 지갑을 보고, 갑자기 달려들면 어떡하지? 주변에서 이와 비슷한 아이들 무리가 날 둘러싸서 해하면 어떡하지? 철사가 아이의 단순한 장난감일지도 모르지만, 교육 중 들었던 사례와, 선배단원들의 에피소드가 떠올라 괜히 무섭고 조심스러워진다. 종환아 무리하지 말자.
' 그러니 천원만 줘. '
순간 흔들렸던 마음이 다시금 정리가 되며, 돈을 주지 않기로 결정을 하지만 아이의 눈을 보니 다시 한번 마음이 복잡해진다. 아이에 대한 가여움, 나를 해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하지만 안전이 우선되어야 겠지. 다시금 마음을 다지고, 아이에게 진심어리게 말해보기로 했다. 다음에 슬리퍼라도 하나 사다 주리라. 오늘은 이렇게 무력하지만, 다음에 보면 천원이 아니라 오천원도 쥐어주리라. 그리 마음먹었다.
- 나 지금 잔돈이 버스비 밖에 없어. 그러니 다음에 만나면 꼭 줄께. 어때?
' 됐어. 지금 천원 줘. 너네 한국인은 돈 많잖아. 천원만 줘. '
세상의 외면에 익숙해져 버린 것일까? 내 진심은 그 소년에게 필요없는 듯 하다. 그 소년에게는 당장 먹을 것을 사먹을 천원이 필요하다. 내 말에 감동은 커녕, 눈에는 적의가 가득하다. 저 것이 10살 남짓한 아이가 낼 수 있는 눈빛이었던가. 그 소년보다 나이가 두배는 더 먹은 나지만, 저 적의가 나를 향하면 어쩌나 싶어, 또 한번 움츠러 든다.
- 다음에 꼭 줄께.
지금 당장 소년에게 해 줄 것이 없어, 더 이상 같이 있기 거북해진 나는 자리를 피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정류장에선 좀 멀지만 다른 거리로 가기 위해 발걸음을 나섰다. 아이는 행여나 나를 놓칠까 얼른 따라붙으며 떼를 쓰기 시작한다. 하지만 내가 아무런 반응 없이 걷기만을 반복하자 이내 포기했는지 걸음 멈추었다. 그리고.....
나에게 천원만 달라는 떼를 쓰는 대신 뒤에서 나를 향해 섬뜩할 정도로 악을 썼다.
' 더러운 한국인!!!!!!!!!!!!!!!!!!!!!!!!!!!!!!!!!! '
' 창녀!!!!!!!!!!!!!!!!!!!!!!!!!!!!!!!!!!!!!!! '
' 멍청이!!!!!!!!!!!!!!!!!!!!!!!!!!!!!!!!!!!!!!! '
2주 뒤 나는 센트로에서 그 길을 지나치는 버스에서, 창밖으로 그 소년을 다시 볼 수 있었다. 그 소년은 닫혀진 가게 문 앞에서, 여전히 신발도 없이 그 때 그 옷을 그대로 입고, 움츠린 채로 잠을 자고 있었다.
< 어느 국적이든, 어느 환경에 있든 어린이라는 이유만으로 꿈꿀 수 있게 만들어줘야 하지 않을까? >
< 어린이는 천진난만하게 웃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어린이다. 하지만 그렇게 만드는건 우리 몫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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