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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후안

Estupendo [: 룰루랄라 ]








 덥고, 아주 덥고, 매우 덥고만 반복하던 파라과이에, 드디어 가을이 왔다. 뭐 가을이라고 딱히 다르진 않지만, 그래도 꼴에 가을이라고 아침에는 제법 쌀쌀하다. 





 어릴 때부터 나는 창문을 열어 놓고 자는 것을 좋아했다. 늦은 새벽, 창문가 으스름이 비추는 달빛에 취해 잠드는 것이 좋았고, 아침에 새 지저귀는 소리, 따스한 햇빛에 눈 비비고 일어나는 것을 사랑했다.





 여기서도 나는 창문을 늘 열어놓는다. 무수한 벌레들이 몰려들어, 창문 덕지덕지 붙어 있는 것이 낭만적인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지만, 밤 늦게 비추는 달이며, 이른 새벽부터 느껴지는 햇빛의 안녕이 한국의 그 것과 똑같다.








< 아침에는 늘 반쯤 혼이 빠져있다. 동료단원은 그런 나를 보고, 저혈압인 것 같다고 제법 의학적인 판단을 내렸다. >






 나는 오늘도 아침부터 울려대는 새 소리에 눈을 떴다. 푸근한 이불에서 나오자 마자 선선한 공기가 몸을 감싼다. 잔뜩 움츠러드는 몸, 아직은 되돌아 오지 않은 정신을 챙겨가며, 기계적으로 주방으로 털레텔레 낡은 슬리퍼를 끌고 나간다. 그렇다. 일어나자마자 내가 가는 곳은 늘 욕실이 아니라 주방이었다.







< 여긴 어디 숲속이 아니다. 바로 우리 집 앞. 내 창문밖으로 보이는 풍경되시겠다. 물론 이 곳에서 당신이 상상한 그 숲 속 동물 친구들을 볼 수 있다. >






 내가 좋아하는 하얀색 머그컵에, 커피믹스를 하나 타서 한 모금이 입에 무니 몸이 땃땃해진다. 싸구려 빗물 인스턴트 커피도 이 때만큼은 스타벅스 모닝커피 부럽지 않다. 거기다 바나나라도 집에 남아 있는 날엔, 입에 문 바나나, 한 손에 든 따끈한 커피한잔, 그 모습 찬란한 가쉽걸의 뉴요커다. 그 때 마침, 거실 바닥에 바퀴벌레만 지나가지 않았더라도.






 방에 돌아와 컴퓨터를 켠다. 내가 가진 유일하게 세상으로 통하는 문. 내 일과는 커피와 바나나, 그리고 이 사랑스러운 인터넷으로 시작된다.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나. 나 없이도 한국은 잘 돌아가나. 만국이만리에서 아침부터 조국 걱정 한번 하고, 페이스북을 통해 친구들의 안부를 하나하나 살핀다. 






 딸그락거리는 설겆이 소리. 홈스테이 엄마가 일어난 모양이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나? 학교 갈 준비를 밍기적밍기적하기 시작한다. 아직은 그 맛이 익숙하지 않은 현지 치약을 잔뜩 칫솔에 발라 양치질 하는데, 3분, 3분, 늘 3분이라고 애들에게 외치면서도 정작 내 양치질은 1분 30초면 끝이 난다. 갸르륵 한번 헹구고, 세면대 거울을 통해, 오늘도 멀쩡한 내 얼굴을 구석구석 관찰한다. 잘하고 살고 있구나. 어제보다 나은 안색에 안심이 된다.






 유난히 부스스한 머리. 오늘은 샤워를 꼭 하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우리 집은 샤워기가 고장나서 온수가 나오지 않는데, 오늘 같이 쌀쌀한 날이면, 우물물 또한 얼음장처럼 차가워, 몸에 물을 끼얹기가 겁이 난다. 하지만 오늘은 품위 유지를 위해, 이 한 몸 찬물에 던져본다. 






 옷을 주섬주섬 입는다. 일교차가 큰 날씨라, 건물 안은 쌀쌀해도 밖은 더운 정말 감기 걸리기 좋은 환경이다. 오늘은 반팔에 긴 츄리닝 바지, 그리고 가벼운 조끼로 정했다. 멋은 안나지만, 땀을 뻘뻘흘리거나 덜덜 떨지 않아도 되니 오늘 같은 날씨에 안성맞춤. 다른 단원들이 봤으면 그 촌스러움에 기겁할만한 스타일이지만, 이 동네엔 누구하나 뭐라할 사람 없으니 오늘도 당당하게 이 꼴로 마을을 휘젓고 다닐 것이다.






 도서관 열쇠를 목에 걸고, 핸드폰, 노트, 필기도구 그리고 내 친구 OFF까지 코이카 가방에 주섬주섬 쑤셔넣는다. 아이팟 이어폰을 양 귀에 꽂고, 양발에 운동화까지 장착하면 출근 준비 완료. 






오늘도 시원한 음악, 따쓰한 바람을 느끼며, 메씨 등에 업혀 기분 좋은 출근길이다. 룰루랄라.








< 내 출근 길. 인적은 드물지만 그 만큼 동물이 많으니, 가는 길 심심하지 않다. 거기다 차꼬의 특유의 맑은 공기까지 더해지니 그야말로 룰루랄라! >






< 퇴근 길에 찍은 하늘. 파라과이의 최고의 관광자원은 이 하늘이 아닐까? 각양각색, 수시로 변하는 하늘을 보며, 한국에서는 없었던 하늘 올려다 보는 습관이 생겼다. >






* Estupendo [: 멋들어지는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