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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후안

El tiempo vuela [: 시간은 날아간다 [1]






시간은 날라간다 El tiempo vuela.





 요즘 현지인들과 있으면서 굉장히 자주 듣는 말이다. 이 곳에 파견되어 낯선 환경에, 한걸음 한걸음 두리번 두리번 거렸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차께뇨 생활 11개월차라니... 정말 세월 참 빠르다. 물론 흘러간 세월 무색하게 아직도 어리벙벙하고 배울 것 투성이의 나다. 하지만 이제는 남들이 파라과이 생활은 좀 익숙해지셨어요? 라고 물어볼 때 적응중이예요가 아니라, 적응 완료했어요 정도는 당당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 이제 나도 짬밥 좀 먹었다.





 뒤돌아 보니 이 곳에서 생활하는 동안, 정말 별의 별 일들이 많았다. 빗물 샤워, 3일 단수생활, 뎅게... 그리고 작고 소소하지만 아름답고 재미있었던 수많은 에피소드들. 하나하나 떠올려보면 내가 여기서 참 다이내믹하게 살았구나 새삼 또 한번 느끼게 된다. 오늘부터 블로그에서는 파라과이 생활 중간 점검의 의미에서 그동안 생활하면서 있었던, 하지만 짧은 것이라 다루지 않았던 여러 에피소드들을 여러편에 걸쳐 담아 보려고 한다.
















[1] 





 

 파견된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은 날이었다. 그 날은 한국 기준으로 5월 15일, 스승의 날이었는데, 동료 단원과 산책도 하고, 주변 지리도 익힐 겸 근처 동네 마을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새로 보는 낯선 풍경들... 아기자기한 원색의 집들과, 타일 하나하나 꼼꼼하게 배치된 도로, 새소리가 지저귀는 한적한 마을. 마침 덥지도 춥지도 않는 딱 좋은 날씨까지 내 컨디션은 그야말로 최상이었다. 




 그 때였다. 두리번두리번 거리던 동양인 두 청년이 신기했던지, 맞은 편 주택에서 아이들이 우리를 신기하게 쳐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빠라과이에 와서 처음 만난 꼬맹이들. 한국에서 가르쳤던 아이들이 떠오르면서 묘하게 반갑고, 친근하게 느껴졌다. 우리와 눈이 마주치면 벽 뒤로 숨고, 또 고개를 빼꼼 내다 보는 수줍음. 이렇게 티 없이 맑은 아이들까지 만나다니, 호텔에서 나와 산책하기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짧은 시간. 나는 아이들과 인사라도 한번 나눠보고 싶었다. 서로 웃으면서 반갑게 인사하는 것이 정이 아니겠는가. 덧붙여 얼마 배우지 않아 지극히 외국인다운 발음의 스페인어도 시험해볼 겸, 나의 어설픈 인사에, 수줍게 웃으며 대답하는 그들의 모습이 너무 보고싶었다. 




 나는 그들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면서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안녕Hola?




 아이들은 동양인 아저씨가 다가오니 부끄러운지 벽 뒤에 꼭꼭 숨어버렸다. 귀여운 자슥들 부끄러워하긴. 나는 역시 애들은 애들이다고 생각하며, 뒤돌아 서서 가려고 하는데 벽 뒤에서 스멀스멀 뭔가 올라오는게 아닌가. 내가 멀어지니 다시 애들이 올라오는건가? 인사라도 해주게? 하면서 지켜보는데.... 올라온 것은..................가운데 손가락 욕이었다........퍽Q.......남미 아이들의 순진한 미소를 기대했던 나에겐 정말 충격적이었다. 게다가 오늘은 평범한 날도 아니고 스승의 날이 아닌가........... 내 아이들은 아니지만, 내 제자들에게 욕먹은 것 같아 그 충격은 그야말로 두 세배........ 나는 그날 제대로 멘붕상태에 빠졌다. 이성은 끊어지고....결국 그냥 욕만 먹고 갈 수 없었던 나. 이런 아이들은 교육이 필요하다며,




나도 똑같이 열심히...... 응사했다.......





 정말 유치 뽕짝의 국제전이다.







< 첫 인상으로 인해 다소 거칠지 않을까 걱정했던 남미 꼬맹이들은, 우리 꼬맹이들을 보면서 오해가 많이 풀렸다. 하지만 그 때 그 날의 기억은 정말 잊혀지지가 않을 정도로, 내 교사 생활의 수치다 -_ㅠ)






[2]






 차코는 동물의 왕국이다. 콩알만한 뱀에서 아나콘다 같은 뱀, 화려한 색의 개구리에서 놓인 장소에 따라 색을 자유자재로 바꾸는 15만 시가의 몽키어쩌고저쩌고 하는 개구리, 이구아나, 위풍당당 도마뱀, 앵무새떼, 여우 등등 하나하나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문제는 내가 지금 앞에서 언급하는 것들은 바로 필라델피아 시내에서도 나오는 것들이라는 것에 있다. 시내 밖으로 나가면 다큐멘터리에서나 나오는 재규어네 퓨마네, 까르삔쵸, 맥까지 나온다. 




 주변에 여러 동물이 상주하다보니, 자연히 동물과 엃힌 에피소드도 많이 나온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아마 괴물 메뚜기의 습격이 아닐까 싶다. 그 날도 어김없이 모래바람을 헤치며 출근을 하고 있었다. 그 당시에는 메씨를 입양하지 않았기 때문에 온전히 내 두 발로만 학교에 갔었는데, 대중교통이 없는 탓에 편도로만 자그마치 50분이 걸렸다. 늘이어폰에서 나오는 음악을 흥얼거리며 걷고 있던 그 때, 저 멀리서 아름다운 날개를 가진 한 쌍의 새가 날라 왔다.




 사실 아름다운 날개니 뭐네 처음에는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이미 앵무새떼며, 벌새 떼며 수 없이 많은 새들을 봐왔고, 또 앞으로 많이 볼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는 파견 처음 처럼 신기해 하면서 유심히 관찰하는 행동은 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새들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는데, 그 것은 그들의 화려한 색감도, 그들의 화려한 몸짓도 아닌, 유난히도 정직한 그들의 이동 방향 때문이었다. 그렇다.... 그들은 나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먹잇감을 발견한 독수리처럼.




 딱 봐도 내 손바닥은 족히 넘어보이는 새가 나에게로 날아오니 무척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나는 도망치거나 다른 일련의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 새는 새. 뭐 크게 문제가 되겠냐 싶었던 것이다. 나름 머릿속으론 내 행동에 관한 논리적인 이유들을 생각해 내었는데, 첫째 일단 그들은 나를 먹지 않을 것이고, 둘째, 기어코 날 공격했다면 나에게는 그들과 맞서 싸울 책들이 있으며(책을 파리채처럼 사용하면 좀 타격이 있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난 남자였다. 그것도 갱상도 상남자.




 순간의 착각이라고 생각했던 그들이 정말 대쪽같이 내 쪽으로 날라오고 있었다. 나는 멈춰서서 이들이 그냥 날아갈 지 아니면 진짜로 나에게 볼 일이 있어서 오는 지 궁금해졌다. (어느 순간 걷는 걸 멈추고 서 있었다.) 조금씩 조금씩 가까워 오는 그들.... 살짝 태양빛이 수 놓은 그들의 날개는 매력적으로 보이기 까지 했다. 근데... 가까이 오면 올 수록 그들의 생김새가 새의 그 것과는 살짝.... 아니.... 많이 다르다....................




 그 것은 무려 새를 탈을 쓴... 메뚜기였던 것이다. 거대 괴물 메뚜기. 나무 가지도 씹어 먹을 것 같은 그 통통한 메뚜기가 나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벌레에 대해서 공포심은 없었으나, 유난히 통통한 벌레 ( 예를 들면 메뚜기, 곱등이, 귀뚜라미, 바퀴벌레 등등) 은 보는 것만으로도 질겁을 했었는데, 내 손바닥만한 메뚜기가 날아오니 머리가 새하얘졌다. 이게 바로 멘붕이라는 건가? 손가락도 깜짝 못할 패닉상태.....................




 그리고 나는 그 순간 이성의 끈을 놓고, 출근길 반대방향으로 정신없이 소리를 지르며 도망쳤다. 코이카 이미지고, 한국인 이미지고 뭐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냥 저 메뚜기를 안 볼 수 있는 곳으로. 오랜만에 있는 힘껏 내 달렸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주변 환경이 낯설다. 결국 그 날 출근 시간은 10분이나 늦어졌다.





 



< 차꼬는 개미부터 스케일이 다르다. 무려 내 엄지 손톱만 개미가 떼로 다닌다. 그리고 어디서 나왔는지 음식물이나, 물이 있으면 마치 플래쉬몹 처럼 우르르 이곳저곳에서 나온다. >






[3]






 현지적응을 위한 내 OJT집은 기관장 집이었다. 가기 전, 새로 지어서 깔끔하다, 살기 편하다, 이쁘다라는 말을 들었던 터라 굉장히 기대가 컸었는데, 그 기준이 현지인 기준이었나보다. 처음 도착하자마자 든 생각은, 아 여기서 어찌 지내지였다. 물론 듣던대로 깔끔하긴 했고, 나에 대한 배려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방 안에 화장실까지 새로 만들어두었다. 




 화장실은 겉보기에 너무나도 멀쩡했다. 한국에서 보던 그 것과 비슷했고, 외향상으로는 수도 호텔에서 머물렀던 그 곳에서 보다 훨씬 좋아보였다. 개도국에서 다들 화장실때문에 고생한다지만, 내 것은 새 것인데다 겉보기엔 비데만 없지 거의 최신식이 아닌가. 난 화장실 때문에는 고생하지 않겠구나, 안심하고 감사했다. 하지만 섣부른 판단은 금물. 겉보기에 속지 말자. 내가 OJT 기간에 가장 난감했던 건 그 화장실 때문이었다. 




 너무나도 안락하고 위생적인 그 화장실. 얼마가지 않아 그 화장실의 실체가 밝혀졌다. 그 화장실은 수세식이지만, 수동식 수세식이었던 것이다. 물 내리는 손잡이는 그야말로 장식품에 지나지 않았다. 물을 내리기 위해서는, 무조건 용변을 보고 난 뒤에 나는 우물에서 물을 퍼다가 바가지 채로 변기에 들이부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금방 방에 불쾌한 냄새가 퍼져서, 잘 빠지지도 않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늘 화장실을 이용하기 전에는, 낮이든 밤이든 새벽이든 바가지를 들고 우물로 달려가야만 했다. 심지어 우물은 집 마당에 위치해 있었는데, 때문에 사정이 이렇다보니 정말 급할 때는 한 손으론 배를 움켜 잡고, 한 손으론 우물을 퍼겠다고 바가지를 내리는 우스꽝스러운 모습도 많이 연출되었다. 행위 예술이 따로 없다. 그 모습을 보고 기관장 꼬맹이들이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이럴바에는 푸세식이 더 편할 것 같은데, 왜 굳이 수세식을 고집했을 까, 물도 귀한 차꼬에서. 지금 생각해봐도 참 아이러니 하다. 나중에 시간나면 기관장에게 꼭 한번 물어봐야 겠다. 근데 나를 배려해서 일부러 그렇게 만들었다고 말한다면 굉장히 미안할 것 같다.










오늘은 여기까지.








< 차꼬의 흔한 풍경. 꼬맹이가 우물에서 물을 퍼고 있다. 차꼬의 집 구조는 좀 특이한데, 지붕 옆에 미니 수로 같은 파이프가 있고, 그 파이프는 사진과 같이 우물로 연결된다. 그렇다. 여기 우물물은 지하수가 아니라 지붕에 떨어진 빗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