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eunión de los profesores[: 교사 회의]
또리링 또리링.
나른한 주말 아침, 집에 빈둥빈둥거리던 나에게 문자 한통이 왔다. 학교 교장선생님으로부터의 문자였다. 개학 전, 학교 일정과 시간표를 논의할 것이니, 다음 날 8시까지 학교로 오라는 내용이었다. 이 맘때쯤 교사 회의가 있겠지하고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었떤 나였기에, 크게 놀라지 않았으나,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이렇게 몇일 전도 아니고 하루 전에, 그 것도 주말 아침에 문자하나 딸랑, 쿨하게 학교 공식 일정을 투척한다는 게 있을 수 있는 일이던가?. 문자를 받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 것 참 황당하기 그지 없는 것이 참으로 차코스럽다. 이제는 이런 가벼운? 일로는 그러려니 하며 화도 나지 않는 거보니, 이 쪽 사람 다 된 것 같다.
당일 아침, 오랜만의 공식 출근에 마음이 설렌다. 골골하던 메씨도 왠지 씽씽 달리는 것 같고, 무덥던 기후도 한풀꺾여 선선한 것 같다. 방학 중간 중간, 급하게 생긴 학교 일정과 벌려 놓은 프로젝트때문에 학교에 몇번이고 방문했지만, 개학이라는 단어는 오늘 하루, 특별함을 부여하는 것 같다. 새로운 얼굴들과, 새로운 교실, 그리고 새롭게 만들어 갈 시간들. 왠지 모르게 마음이 붕뜨는 것이 소풍 전날 어린아이의 그 것같다.
전날 투척된 공식 일정에도 불구하고, 학교에 가니 벌써 많은 선생님들이 와 계셨다. 밀리안, 펠리시아, 글라디스, 알미데쓰, 그리고 교장선생님인 쎄싸르. 방학 동안 간간히 얼굴을 보긴 했지만, 이렇게 오랜만에 학교에서 만나니 반가운 마음이 든다. 선생님들도 방학 동안 쌔까맣게 변해버린 불쌍한 한국인 동료를 깔깔거리며 반갑게 맞이하며, 떼레레 한잔 하자면서 빈 자리를 하나 권한다. 시간을 보니 7시 40분. 아직 회의까지는 20분이나 남았다. 우리들은 시원한 떼레레를 마시며, 방학동안 있었던 이야기며, 앞으로 있을 학교 일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청량한 떼레레 한잔과 같이 녹아든 씨끄벅적한 선생님들의 수다가 몸 속까지 시원하게 울린다.
< 쉬는 시간에 선생님들과 마시는 떼레레 한잔,
그 중에서도 시원한 레몬향이 감도는 알미데쓰선생님(오른쪽)의 떼레레는 단연 일품이다 >
교사 회의는 8시 정각을 훌쩍 넘어, 8시반에 시작되었다. 모두들 8시가 진작에 지난 것을 알고 있었지만, 떼레레와 수다에 취해 어느 누구도 정각에 회의를 시작하자는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밀리안 선생님의 케이크 강좌를 끝으로, 교장실로 들어가 회의를 시작했다.
회의는 기도로 시작되었다. 방학동안 건강하게 있게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내용과, 앞으로 학교가 잘 운영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소망의 내용. 그런데 그 모습이 조금은 생소했다. 다른 선생님들은 몰라도, 쎄사르와 밀리안은 천주교, 알미데쓰는 기독교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알미데쓰의 기도에 맞춰, 다들 손을 모으고 눈을 감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에게 학교를 위한 기도에 구교와 신교의 구분은 사치같아 보였다. 종교를 넘어 생활이 된 그들의 신을 향해, 다같이 엄숙하게 기도를 드리는 모습, 눈 앞에 펼쳐지는 신선한 풍경에 나는 문화 충격을 받았다. 만약 한국이었다면, 교사 회의 전 기도를 한다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여차여차 하게 된다 하더라도, 특정한 종교를 믿는 신도가, 다른 종교의 기도의 말을 들으며 신실하게 기도를 드린다는 것이 가능이나 한 일이던가?
오늘도 파라과이는 내가 가진 삶의 기준을 사정없이 흔들어댄다.
교사 회의는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주제는 지난 학기에 대한 반성과, 이번 학기에 대한 계획.
- 비만 오면 체육 수업을 못하겠어요. 발이 푹푹 빠져서.
- 작은 북이 찢어져서 이번에 학교 퍼레이드는 제대로 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죠?
- 애들이 빗물을 잘 못먹어서 그런지 배가 아프다고 오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정수기가 필요할 것 같아요.
- 빅토리아 선생님이 이번에 수도로 가셔서 4학년 담임이 공석이네요. 어떡하죠?
교구 관리에 대한 문제에서 부터, 교사 채용, 교육 과정 운영에 대한 이야기까지... 다양한 소주제들이 선생님들의 입과 입으로 던져지며, 뜨겁게 토의의 장이 벌어졌다. 떼레레나 마시며 빈둥빈둥 시간을 보낼 것 같은 그들의 외관과는 달리, 교사회의를 통해 내뱉는 그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학교에 대한 애정과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묻어난다. 특히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보이는 진지한 눈빛은, 나로 하여금 선배 교사의 그 것 마저 느끼게 만든다. 훌륭한 동료들이구나 :)
한창을 교육 환경에 대한 이야기로 열을 올리던 그들은, 갑자기 수업 운영에 대해 그 화제를 바꾸었다. 각자 맡은 학년에서 진행할 교육 프로그램과, 계획하고 있는 교육 목표. 한 명 한 명 그 것에 대해 뿌듯하게 발언을 하는데, 그 중에서 나의 수업 계획은 선생님들 사이에 단연 화제였다. 이 쌔까맣게 변해버린 한국인 교사가 이번 학기에는 어떤 수업을, 어떤 아이들과 진행할 것인가. 그들은 내 입에서 떨어져 나오는 어눌한 스페인어 한 마디 한 마디를 경청했다.
' 선생님들, 저는 지난 학기까지는 미술 수업을 진행했는데, 올해부터는 교장선생님과 상의한 결과 음악 수업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첫 마디부터 너무 큰 건이었나? 내 말이 떨어지자 마자, 선생님들 사이에서 미세한 술렁거림이 느껴진다. 학교 측의 강력한 요청으로 가르치는 과목이 변경되었는데, 그 것이 그들에게 조금의 혼란을 준 것이다. 난 교장선생님과 이야기가 끝난 이야기라 선생님들도 당연히 알고 계실 줄 알았는데, 오히려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시니, 내가 더 당황스럽다. 하지만 그러나마나 나는 내 말을 이어 갔다.
' 그리고, 다들 아시다시피, 옛 7학년 교실에서 진행 중인 마을 도서관 프로젝트로 인해 수업하는 학년과 수업 시간을 조금 조정했으면 좋겠습니다. '
이 또한 교장선생님과는 모든 이야기가 끝난 것이었다. 하지만 내 말을 들은 선생님들의 얼굴엔 조금의 긴장이 어렸다. 내가 지금 말하고 있는 내용 또한 처음 들은 것임에 틀림없다. 갑자기 선생님들 사이에서 질문이 쏟아진다.
- 학년 조정이면 지금 가르치고 있는 학년을 변경한다는 것입니까?
- 지난 번의 미술 수업은 계속 하는 겁니까? 아니면 음악만 하는 겁니까?
- 도서관 프로젝트는 언제끝나지요? 그것도 수업으로 활용하실 겁니까?
예상치 못한 질문 세례에 그야말로 패닉이다. 알고 있었어~ 하면서 선생님들의 힘찬 끄덕거림 속에 무사히 끝날 줄 알았던 나의 발표가, 선생님들의 질문 폭풍을 받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이러한 이야기를 진작에 나와 나눴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선생님께 가벼운 언질한번 주지 않은 교장선생님이 원망스러워 진다. 나는 태연히 이 사태를 관망하는 교장선생님께 분노와 도움의 눈빛을 보냈다. 한 쪽에선 선생님들이 내 대답을 듣기도 전에 내 수업이 들어가야 할 학년에 대해 논쟁하기 시작했다. 내가 얼마나 많은 학년들의 아이들을 가르칠 것이며, 어느 학년을 가르칠 것인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서로 자신의 학년이 음악 수업이 부족하다며 조안의 음악 수업 유치경쟁에 돌입한 것이다. 그리고 중간 중간 내 눈을 바라보며 내 동의를 구하는데, 곤혹 그 자체였다. 교장선생님 또한 갑자기 일어난 이 사태에 어이없어 하시며. 사태를 방관하시다, 나의 원망어린 눈빛에 아차 싶었는지, 조안의 수업이 워낙 인기가 좋아서 생긴 일이라며, 능글능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나와 나누었던 이야기를 조금은 엄숙하게 말을 이어갔다.
- 선생님들, 아시다시피 조안선생님이 유치원부터 9학년까지 350명이 넘는 모든 학생들을 다 가르치기는 무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조안선생님과 저번에 상의를 해서 3학년에서부터 6학년까지 아이들을 중점적으로 가르치되, 나중에 추후에 다른 과목으로 다른 학년을 가르치는 것으로 일단 정했습니다.
조금은 권위적인 말투의 교장선생님의 말씀에 선생님들의 얼굴에서 희비가 교차했다. 왜 이번에도 조안은 우리 학년에 수업에 안들어오냐며 궁시렁궁시렁 불만이 가득한 저학년 선생님부터, 눈이 마주칠 때마다 춤 추는 시늉을 하며 잘 부탁한다고 말씀하시는 방금 웃음의 고학년 선생님. 교장선생님 덕분에 한시름 덜었지만, 당분간 저학년 선생님들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쉬는 시간에 던질 스페인어 농담이나 몇 개 생각해둬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안 그럼, 그녀들의 귀여운 투정에 몇달 간은 시달려야 할 테니깐...-_-
아, 파라과이에서 선생님하기 힘들다.
< 봉사단원 동안 가장 많이 부딪히고, 가장 많이 협력하게 될 코워커 교장선생님 쎄싸르!
그는 비공식적으로 날 대할 때 언제나 늘 조.왕. 빡. 이라며 마치 중국어 같은 한국어 이름을 꾸준히 부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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