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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후안

Habitante [: 우리 도서관엔 한국인 선생님이 살고 있어요]


* Habitante [: 거주민]













 도서관이 조성된 지 1주일 채. 아직도 나는 도서관 정리를 하고 있다. 일을 진행하면서 중간중간 생각치도 못한 과제들이 계속해서 나오는 까닭이다. 다행히 기관장과 도서관 개장 예정일을 4월 중순쯤으로 여유롭게 결정한 덕분에 시간적 여유가 있지만, 매일매일 생기는 새로운 일감에 과연 그 날까지 제대로 도서관을 열 수 있을 지 걱정이 된다. 매일 같이 찾아와서 뜨랑낄로하게 일을 처리하라는 교장과는 달리, 전혀 성격이 뜨랑낄로(여유롭게)하지 못한 탓에 나는 매일같이 도서관에 붙어 있다. 보통 아침부터 저녁 7시반, 8시까지 도서관에서 도서관일도 하고 수업준비도 하고 그러는데, 이 때문에 주변 선생님들은 조안선생님은 필라델피아에 적당한 집을 못 구해서 이제 결국 도서관에서 살기로 한거 아니냐는 농담까지 던진다. ( 학교 관사에 사는 알미데쓰 선생님은 심지어 나를 Vecino(이웃)이라고 부른다.)











 도서관은 지금 어느 정도 하드웨어적인 요소가 갖추어져 있다. 충분한 공간의 교실, 많이 부족하지만 어느 정도 읽을 만한 책들, 도서관 관리를 위해 필요한 빗자루, 쓰레받기, 화이트보드 등. 도서관이 조성된 그 날, 그 시간부터 겉보기에 도서관은 당장 개장해도 어느 하자도 없을 것만큼 완벽했다. 다음 날 찾아온 교장선생님이 이제 애들만 와서 책을 읽으면 되겠네라고 말할 정도였으니까.








< 기증 받은 전단지, 잡지를 아이들이 읽기 쉽게 단권화 하는 것도 요즘 내가 하는 일이다. 기증 받은 모든 것 하나하나 소중한 것들이라 어떻게 하면 더 잘 활용할 수 있을까 늘 고민하고 있다. >







 하지만, 그건 제 3자의 입장에서나 할 수 있는 아무것도 모르는 마음 편한 소리다. 지금 마을 도서관은 소프트웨어적인 요소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아니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일단은 책을 분류하기 위한 적당한 도서관 분류체계가 없고, 도서관 이용 규칙에 대한 지역 주민의 이해가 없으며, 무엇보다 바른 독서 문화가 없다. 이대로 도서관을 열었다가는 책이 없어져도 무엇이, 몇권이나 사라졌는지도 알 수 없고, 도서관은 시장 바닥처럼 소란스럽고, 금세 더러워질 것이며, 책은 하루가 멀다하고 점점 찢어지거나 망가지는 등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예상되는 문제가 이 정도이니, 온지 6개월밖에 되지 않은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차코 문화로 인해 돌발적으로 생길 에피소드까지 생각하면, 4개월이나 걸려 정성스럽게 만든 이 도서관이 열자마자 폐장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요즘 하루가 멀다하고 시간만 나면 도서관에 죽치고 앉아 도서관 소프트웨어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다. 주요한 테마로 도서관 시스템 구축. 그 중에서도 도서관 책 분류 체계와, 도서관 이용 수칙에 대한 교육을 중점 목표로 이 것 저것 생각하고 있다.






 요즘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도서관 도서 분류 시스템 구축은, 도서관이 조성되기 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마을 도서관의 규모도 작았을 뿐 더러, 그 마저도 다 채우지 못하는 부족한 책의 수에 딱히 책을 분류하는데 세심한 틀이 필요하겠냐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도서관 조성되는 당일날 우리가 구입하고, 여러 기증자들로 받은 책의 수는 생각했던 것보다 많았고 다양했으며, 거기다 학교 교장실에서 썩어가던 책들까지 꺼내니 도서관 책은 약 1000권 가까이나 되었다. 덧붙여 가끔씩 쉬고 가겠다며 오는 꼬맹이들이 책을 보고 눈 앞에서 체계없이 멋대로 꽂아두는 모습을 보니, 도서관에 체계화된 책 분류 시스템의 필요성이 더욱 절실히 느껴졌다.










 뒤늦게 예상치 못한 사서 공부가 시작되었다. 팔자에도 없는 이 사서공부. 지금 생각해보니 도서관 관리를 맡은 이상, 피할 수 없는 일이 아니었나 싶다. 공부는 주로 인터넷을 찾아보는 것으로 시작되었는데, 주변에 사서단원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서학에 대한 전문 서적을 구하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평소에 인터넷을 통해 질좋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전혀 느끼지 못한 나는,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전문서적을 통해 지식을 얻는 것을 선호해 왔는데, 그래서 나에게 정보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인터넷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굉장히 절망했다. 그러나 세상이 좋아진 것인지, 내 검색 스킬이 향상한 것인지 다행스럽게도 우리의 정보의 바다에는 다양한 방법의 책 분류 방법이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었다. 






 인터넷의 여러 백과사전이나 논문들에 따르면, 도서분류법에는 크게 십진분류법과 비십진분류법으로 나누어져있는데, 우리가 한국 도서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숫자를 이용한 그 것은 십진분류법이고, 알파벳을 이용한 미국의 의회도서관 분류법과 같은 것을 비십진분류법이라고 한다. 여기서 특히 십진분류법은 세계적으로 많이 통용되어 사용되어 지는데, 언어적으로 제약이 덜하고 체계적인 것이 그 이유라고... 십진분류표에 대한 소개는 아래와 같다.


 지식의 모든 분야를 우선 1에서 9까지로 분류하고, 그 어디에도 수록하기 어려운 백과사전 ·연감 등 전반적인 도서를 0[總類]으로 하여 제일 앞에 둔다. 이 0에서 9까지의 주류(主類:main class)라는 제1차 구분을 각각 0과 1에서 9까지 나누어 강목(綱目:division)이라는 제2차 구분을 한다. 이와 같은 구분을 되풀이하면서 차례로 세분하여 나간다. 그런데 동일 분류기호 속에는 도서의 수령순(受領順), 저자명(著者名)의 순 또는 간행년도순 등 갖가지 방법으로 순서를 정하여 분류한다. [두산 백과사전]



 듀이의 십진 분류법

 한국십진분류법

000 Computer science, information & general works

100 Philosophy & psychology

200 Religion

300 Social sciences

400 Language

500 Science

600 Technology

700 Arts & recreation

800 Literature

900 History & geography

000 총류

100 철학

200 종교

300 사회과학

400 자연과학

500 기술과학

600 예술

700 언어

800 문학

900 역사



 이렇게 해서 나온 십진 분류법은 크게 듀이식과 한국십진분류법으로 나누어 지는데, 지식의 종류에 따라 크게 10가지로 나누고, 그 밑으로 세부적으로 또 한번 나눠지는 것이 거진 비슷하다. 



 이와 반대로 미국의회도서관 분류법과 같은 비십진분류표는 알파벳을 앞에 두거나, 우리가 자주가는 교보문고와 같은 대형서점에서 만든 각자 나름의 기준의 분류법과 같은 것을 의미하는데, 어느 것이 더 편리한 지는 문화나 상황에 따라 다르다고 한다.









 나는 도서분류법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가장 안전한 방법으로, 가장 널리 통용되어 있다고 하는 십진분류법, 그 중에서도 한국식 십진분류법을 적용해보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1000개의 분류기준을 가지는 그 것을 그대로 마을도서관에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르는 일. 일의 단위까지 나누면서 분류하기에는 자신이 없어서, 먼저 100단위로 나누어진 항목에 따라 분류하기로 결정하고, 임의로 섹션을 나누었다. 끝부분은 총류, 가운데에는 문학, 세번째 칸은 사회과학.....나름의 규칙에 따라, 후다닥 임의로 분류 기준을 정했다. 어느 정도 기준이 정해지자 머리가 말끔해지더니 일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구석에 쳐박혀 있는 라디오를 켜고, 먼저 책장에 무질서하게 꽂혀있는 모든 책을 차례대로 다 빼어내며, 분류 작업을 시작했다.




' 이 것은 철학, 이 것은 문학, 이 것은 사회과학.... '




 책을 단순히 분류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책의 양도 양이지만, 책들이 스페인어로 적혀있어, 부족한 언어실력을 가진 외국인이 이를 혼자 구분해서 하려니 쉽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어느 것은 마치 사회과학 책 처럼 제목을 거창하게 정해놓았지만, 실은 소설책이나 자기 계발서였던 양의 탈을 쓴 늑대같은 놈들도 꽤나 있었다. 이런 것들은 의도치 않게 내 머리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책을 책장에서 꺼내서, 대충 임의로 나누는데만 4시간이상이 걸렸다. 도서관 창문을 보니 해가 뉘엿뉘엿 지는 것이 오늘 안에 다하기는 글러먹은 것 같다. 갑자기 급 피곤해진다. 잠시 높이 쌓인 책에 걸터 앉아 한숨돌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여기저기 널부러진 책들로 인해 시장바닥이 따로 없다.










< 막상 시작할 땐 몰랐는데, 한창을 정리해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잠시 허리를 편 순간 내 눈앞에 펼쳐진 모습이다. 처음 감상평은 '아...저질렀구나....' 였다. >







 다음 날도 어김없이 도서관 은둔 생활이 계속되었다. 책을 옮기고, 분류하고, 사전을 뒤적뒤적거리며 책의 성격을 파악했다. 그러다 수업 시간이 되면, 수업하기 위해 잠시 나가 있다가, 수업이 끝나기 무섭게 떼레레 한잔 하자는 다른 선생님들의 친절한 제안도 물리치고 다시 도서관에 쳐박혔다. 그렇게  100단위로 책을 분류하고 또 분류했다. 하지만 쉬지 않고 일을 진행한 것 무색하게, 널부러진 책의 수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도서관의 책을 분류만 하는데, 꼬박 3일이 걸렸다. 단순히 10가지 항목으로 나누고, 비슷한 종류의 책을 다시 분류하는데만 걸린 시간이다. 나눠진 책을 또 다른 기준을 세워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머리가 지끈 아파온다. 그리고 그 책에 각각의 기호도 넣어줘야 겠지. 머리속 깊은 핵에서 5000도의 맨틀이 움직이는게 느껴지는 것 같다. 도서관 사서들이 존경스러워진다. 반 명이라도 좋으니 코이카에서 갑자기 우리 학교에 사서단원을 하기로 했다는 이루어질 수 없는 가까운 미래가 펼쳐지기를 물 떠넣고 빌고 싶어졌다. 휴.....언제 끝날까............







오늘도 나를 다독거리며 도서관 문을 나선다.

수고했다. 혼자 더 앞으로 조금만 더 수고하자.








< 한창 정리 중일 때, 쳐들어 온 꼬마 칩입자들... 처음엔 비를 피하겠다고 해서 한 명, 두 명 받아준 것이... 점점 늘어서 이젠 많은 날은 30명도 넘게 온다. 이 때는 정리한다고 애들을 한 쪽으로 몰아 넣고, 정신없이 정리했었는데, 너무 조용해서 고개를 들어보니, 애들이 얌전히 책 읽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엽고 대견해서 찍은 한 컷! :) >






< 이제 책 정리가 끝나서, 마음 껏 딩굴거리며 책을 읽을 수 있게 된 꼬맹이들. 하루도 빠짐없이 찾아오는 애도 나오기 시작했다. 이 녀석들을 위해서라도 힘을 내서 하루 빨리 정식 개장할 수 있도록 Fuerza!!! (힘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