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 지는 이야기[8]
동쪽으로 봐도, 서쪽으로 봐도, 위로 봐도, 아래로 봐도ㅡ, 궁금증이 가득찬 눈들이 가득하다. 이제는 좀 익숙할 때도 되었는데... 아직도 나의 쪽 찢어진 눈이, 나의 누른 퉁퉁한 피부색이 신기한 모양이다.
나는 지금, 싼 후안 축제로 들떠있는 과라니 인디오 마을에 와 있다.
경계가득한 눈빛, 어느 누구하나 먼저 말을 걸려 하지 않는다. 나랑 말을 나누고 있는 사람은 나를 이 행사에 초대한 으보뻬이 교장선생님 내외 뿐. 조그마한 꼬맹이부터, 허리 굽은 할머니까지 그냥 내 주변만 어슬렁거릴 뿐이다.
아, 괜히 왔나. 깔깔거림으로 넘쳐나야 할 마을 축제가 어설픈 정적과, 조심스러운 웃음만이 흘러나오자, 후회감이 몰려온다. 게다가 아무도 마음열고 반기지도, 그렇다고 밀어내지도 않는 이 모양새에 어찌 반응해야할 지 모르겠다. 교장선생님 내외가 돌아 다니며, 지나가는 마을 사람들에게 코이카 봉사단원이고, 아미스닫 선생님이라고 소개시켜주면서 나를 마을 사람들 속에 녹여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잠시 그 뿐, 사람들의 외부인에 대한 그 것은 크게 변하지 않는 듯하다. 온 지도 1시간 넘었고, 이래선 몸도 마음도 불편해서 축제를 즐기지도 못할 것 같다. 그냥 슬슬 갈까? 얼굴도 비췄겠다, 홀짝홀짝 눈치보며 마시고 있던 꼬시도(일종의 밀크티 같은 것)도 떨어지자 주섬주섬 짐을 챙겨 나갈 준비를 했다. 근데 그때 갑자기 내 앞에 한 무리의 인디오 꼬맹이들이 나타났다.
' 저번에 왔었던 선생님 맞지요? '
조심스레 나가려는 내 앞에 애들이 우르르 선 것도 당황스러운데, 나한테 말까지 거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싶다. 잠만 잠만, 지금 나에게 선생님이냐고 물어본거 맞지? 내가 너가 나에게 말을 걸었니?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자, 그 당돌한 녀석들은 고개를 끄덕끄덕 눈하나 깜짝 안한다. 언제 봤다는거지? 내가 선생님인건 어떻게 알지? 둥근 눈들이 초롱초롱 나를 올려보는데 어서 맞다고 말하라는 무언의 압박이 느껴진다. 난 이 녀석들이 도저히 기억이 나지 않는데... 저 확신에 가득한 얼굴에 내가 뭐라고 답해야 할지는 정해져 있는 듯하다. 맞다고 말해야겠지? 그나저나 저 꼬맹이가 기억하는 그가 진짜 나인가? 긴가민가하는 마음과는 달리, 알 수 없는 분위기 속에 뭐 될때로 되라는 식으로 난 그냥 맞다 확 말해버렸다.
- 어.... 맞아...
내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아이들의 얼굴에서 웃음이 번진다. 그리고 악수를 청하는데, 오랜만에 만나는 조카들 보는 기분이다. 그리고 대략적인 소개가 끝나자 다른 꼬맹이들에게도 오라는 손짓을 하기 시작한다. 나랑 벌써 인사를 나눈 아이들과 다르게, 상황을 관전하는 아이들을 아직도 나에게 가까이 오지 못하고 쭈뼛쭈뼛한다.
' 야, 맞잖아. 무서워 하지마. 일루와~!!! 저번에 우리에게 풍선으로 이것저것 만들어준 선생님이야!!! '
건물 뒤에, 엄마 뒤에 숨어 있던 아이들을 끌어내다 못해 답답한 아이가 소리를 꽥 질렀다. 풍선???? 아!!! 어느 한 꼬맹이의 말 한마디에 시선이 집중되고 아이들이 조금씩 몰려온다. 그리고 그들의 눈에서 경계심이 사라짐이 느껴진다. 예전에 여기 방학식때 풍선을 만들어줬었는데, 그 때 있었던 꼬맹이들이 틀림없다. 그들이 생각하던 그 선생님이 진짜 나였던 것이다. 벌써 8개월이나 지난 일을 아직도 기억하다니. 신기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하아, 나도 잊고 있었던 그 일을, 이 8살짜리 꼬맹이가... 아이들이 내 앞에서 왁자지껄해지자, 마을 사람들도 하나둘 경계를 푼다. 축제 이 곳저곳에서 벌어진 놀이로 왁자지껄해지며, 나에게 한번 해보라며 권하는 아저씨까지 나타났다. 그렇게 나는 후다닥 나오려던 그 축제에서, 한 시간은 더 그들과 어울리며 놀다왔다.
그 때 아무 생각없이, 애들 좋으라고 벌였던 8개월 전의 풍선 이벤트가 이렇게. 참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으보뻬이에 대해 저 자세히 알고 싶으시다면>>
http://bluejh7.tistory.com/admin/entry/post/?id=18 차꼐뇨의 끄적거림: [으보뻬이가 사는 방식] 참고 :-)
< 차코 전쟁 휴전 기념, 퍼레이드 행사에 등장한 인디오 코스프레 :) 전통을 사랑하는 그들의 모습이 아름답다 :) >
< 위풍 당당 으보뻬이 인디오 학교 퍼레이드 모습 :) 학교의 상징이 무려 학교 앞 운동장의 나무다. 자연을 사랑하고, 더불어 살아가려는 인디오 다운 상징이지 않나 싶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