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후안

Ironía [: 비 오는 걸 마냥 좋아할 수 없는 이유]

Joan Ojeda 2013. 6. 21. 08:21








 우리 학교는 비가 와도 출근을 한다. '뭐 방학도 아니고, 비 좀 오는 거 가지고, 그게 어때서?', '학교 가는 것과 그 것이 무슨 상관? ' 몇몇은 어찌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이 명제에  고개를 갸우뚱할 지도 모르겠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출근을 하고 등하교를 하는 한국인들 입장에서 보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을테니 말이다. 나도 처음에는 그랬다. 하지만 이 곳 파라과이에서는 이 명제가 결코 상식선의 것이 아니다. 지나가는 파라과죠들에게 우리 학교는 비가 와도 학교를 가~ 라고 말을 흘리면,  백이면 백 의문 가득한 '왜???' 라는 물음과 더불어 동정가득한 눈빛을 보낸다. 심지어 너네 학교는 참 이상하다면서, 싸워서 그 권리를 쟁취하라는 친구들도 있을 정도이다. 그렇다. 이 곳은 비가 오면, 누가 딱히 말하지 않아도, 휴교가 되는 것이 당연한 동네인 것이다. 






 


< 비가 꾸릉꾸릉 또 올 꺼 같은 우리 동네 >





 그렇다고 이 사회적 약속이 파라과죠들의 게으른 민족성에서 나온 것은 결코 아니다. 이 사람들도 누구보다 부지런히 아침을 일찍 여는 일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학교고 슈퍼고 아침 7시부터 일을 시작하니. ) 그러므로 위 약속은 그들 자체의 성향보다, 그들이 처해 있는 사회적 인프라 부족과 관련이 깊은 것으로 보인다. 

 먼저, 이 곳의 길은 포장되어 있지 않은 흙길이 대부분이다. 건조할 때 모래 바람을 있는 대로 일으키는 재앙적인 흙길은, 비가 오고 난 뒤 더 지옥처럼 변한다. 울퉁불퉁함은 말할 것도 없고, 군데군데 생긴 물 웅덩이는 사람이 걷기조차 힘들다. 때문에 이런 날은 도로 곳곳에서 흙웅덩이에 빠진 오토바이나, 자전거를 건져내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을 정도이다. 상황이 이러한 데, 어찌 집 밖으로 함부로 나올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게다가 학교가 집에서 거리가 좀 있다면, 당사자가 키 작은 꼬맹이라면, 누구라도, 집에서 편안히 책 한권 보는 것을 더 택할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우연히 학교에 들린 어느 학부모님의 말에서 힌트를 찾았다.  그 분과 우연히 인사를 나누다, 이것저것 이야기가 길어질 때가 있었다. 그 때마침 떠오르는 이 특유의 문화가 생각나, 왜 비가 오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느냐고 학부모님들에게 여쭤봤더랬다. 학생들이야 이유도 없이 그냥 '비 오면 원래 학교 안오는건데요?' 하고 답하니, 학부모가 이 질문에 대한 가장 적절한 답을 들을 상대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근데 그 때 돌아온 대답은 내가 생각한 방향과는 전혀 다른 부분에서 나왔다. 그들은,



' 그러다가 내 아이가 감기라도 덜컥 걸리면 어떡해요?'



 라고 말했었는데, 단순한 부모의 과잉보호에 기인한 말이라고 하기엔, 그 후에 덧붙인 말이 굉장히 신경쓰였다.



' 약값도 싸지 않은데... '



 아이의 건강이 염려된다면 부모된 입장으로서 당연히 비오는 날 학교에 가는 것에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단순히 이 이유라면, 비 오는 날마다 학교를 보내지 않는 것에 대해 납득하기 어렵다. 안그래도 한국보다 비가 자주 오는 동네인데 ( 물론 우리 동네는 예외이다. ) 우리 나라 부모들은 아이에 대한 사랑이 부족해서 비오는 날에도 그리 열심히 학교를 보내는가? 아니다. 그들은 학교가 아이들에게 비를 말릴 따뜻한 보금자리가 되어줄 수 있고, 혹여나 감기에 걸리더라도 어렵지 않게, 낫게 해줄 약이나 의료서비스에 대한 접근도가 높기에 그렇게까지 크게 걱정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의료서비스가 비싸고, 동네 약국에서 구할 약마저 싸지 않다면 이야기는 크게 달라진다. 여유롭지 않은 경제적 환경에, 높은 가격의 약은 그들에게 엄청난 부담인 것이다. 걸리지도 않은 감기에 대한 약값때문에 학교를 보내는 것을 고민한다니, 때문에 학교가 간이 휴교가 된다니, 한편으론 너무 안타깝기도 하고, 이 문화의 깊은 뜻에 탐복이 되기도 하고, 기분이 복잡 미묘해진다. 






 이유를 대자면 지역에 따라 또 다양하게 수도 없이 나오겠지만, 난 크게 이 2가지의 이유가 비가 오면 아이들이 학교에 잘 나오지 않고, 설령 나오지 않더라도 이해해주는 이 곳의 문화를 만들었다고 생각된다. 내가 내린 결론으론 비 오는 날의 휴교는 이곳 나름의 사회적 배려인 것이다.






 




< 내 출근길. 안 그래도 먼 거리인데... 이 길을 메씨와 함께 갈때는 힘이 부친다. 그렇다고 중간에 멈출 수도 없다. 발을 내 딛을 때가 마땅치 않으니깐. > 




 

 하지만 이 관대한 문화가 우리 학교는 좀 예외다. 좀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우리 학교 선생님들에게는 예외이다. 그 이유는 교장선생님의 교육 방침 때문인데, 하루는 왜 우리학교만 유난히 비가 와도 학교를 와야하냐고 물었더랬다. ( 참, 내가 이런 질문을 파라과죠에게 할지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같은 지역이지만, 다른 학교 선생님들은 학교를 안가는 경우도 많고, 심지어 주변 마을 사람들도 이 상황에 대해 전혀 이해를 못하니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집이 먼 나에게 있어서, 엉망진창인 흙길을 40분간 자전거를 타고 가는 것이 매우 번거로웠다. 그랬더니 그는 자신감에 가득찬 얼굴로 이렇게 답해왔다.




' 학교는 학생들을 위해 있는 곳이야. 비가 아무리 오더라도, 학교에 학생이 한명이라도 올 수 있으니깐, 그를 위해 우리는 학교를 지키고 있어야 해.'




 아이코. 너무나도 당연했던 명제. 대학교 시절 지독시리 들었던 그 말. 내가 교사가 되기 전, 노래를 부르며 마음 속에 간직해왔던 그 생각. 그 말을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예상치 못한 사람에게 들으니 머리가 멍해진다. 한방 먹었다고 해야하나? 아니면 당황스러웠다고 생각해야 하나. 물어서 안될 것을 물어버린 느낌이었다. 잠시라도 왜 우리학교는 비가 오는데도 출근을 하냐고 불만을 가졌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평소에 농담따먹기나 해서 능글능글 가벼워 보였던 교장선생님이 갑자기 열혈교사 드라마같은 멘트를 하니, 적응도 안되지만, 내가 생각한보다 훨씬 큰 사람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그리고 이런 이유라면, 위대한 그의 교육관을 위해 비 오는 날 학교에 오는 수고 쯤은 감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학교만의 비오는 날의 예외적인 출근. 완벽하게 납득이 된다. 






 




< 우리 학교 앞 (위) 자동차가 힘겹게 거북이 운행을 하고 있다. 근데, 자동차 너무 부럽다. 그와 비교되는 내 메씨 (아래) 안그래도 위태위태한데, 이런 날 메씨와 함께 하면 중간에 공중분해 할 것 같아 불안하다. >






 때문에 지금도 나는 비가 오면 진흙탕을 헤치며, 학교에 간다. 가방에 방수 마개를 씌우고, 난 바람막이 점퍼위에 우비까지 완전 무장하고서. 페달 하나하나 밟아가는게 평소보단 몇 배는 힘이 들어, 도착하면 땀이 범벅이지만, 또 다시 집에 돌아갈 때를 생각하면 아찔하지만, 이 날에 학교에 올 아이들과, 그 수업을 위해 열심히 메씨의 바퀴를 돌린다.




 어....어...어...어!!!!!!!!!!!!!!!!!!!!!!!




 자전거가 갑자기 멈춘다 싶더니, 아니나 다를까 물웅덩이빠졌다. 웅덩이가 많아, 자전거 바퀴 하나만 지나갈 수 있는 곳만 찾다가 결국 미끄러져 버린것이다. 보기 좋게 나는 한 마리의 새가 되어 날아서 흙탕물에 풍덩, 요란한 소리를 내며 꼬라박혔다


. 머리카락이며, 손이며 할 거 없이 죄다 진흙투성이. 게다가 우비는 찢어지고, 무릎에선 피가 철철 흐른다. 아직 도착하려면 20분은 더 자전거를 타고 가야하는데... 떨어진 충격으로 허벅지며 허리까지 아프니... 이거 참 갈수록 태산이다. 비 오는 날, 자질구리한 사고가 영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오늘 처럼 심하게 다친 적이 없었는데.... 내리는 비에 피도 줄줄 흘러 내리니 뭔가 처량하기 그지 없다. 비는 오고, 메씨는 진흙탕 목욕중이고, 옷은 더럽고, 수업은 해야겠고... 






아...교장선생님의 '우리 아이들~' 소리가 귀에 맴도는 듯하다. 가긴가야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비오는 날 학교 가기는 정말 싫다.................................................






 


< 비 오는 날, 학교 근처에 아이들은 몇명 안되지만 수업을 들으러 온다. 사진은 쉬는 시간에 도서관에 놀러 온 3학년 꼬맹이들. 저번에 들여온 전자피아노를 만져보며 신기해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