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cicleta [: 이 놈 이 놈 물건일세]
* Bicicleta [:자전거]
우리 집에서 학교까지는 걸어서 50분 정도가 걸린다. 물론 편도로만 계산한 것이고, 아무런 변수가 없다라는 가정했을 때의 시간이었다. 그래서 오전 반, 오후 반에 모두 나가서 출퇴근을 하는 날에는 기본적으로 4시간 정도를 걸어야만 했다. 이와 같은 상황에 혹자는 불쌍하다고 동정하기도 하고, 그리고 혹자는 왜 교통 수단을 이용하지 않냐며 질책하기도 했다. 불쌍하다고 동정하는 거야 뭐, 나도 처음에는 이러한 출퇴근 환경에 불평도 하고 스스로 자신을 가여이 여겨왔기에 할 말이 없지만, 후자의 의견에 대해서는 나도 할 말은 많았다. 일단 이 곳 차코 필라델피아에는 대중 교통이라는 것이 없다. 시내 버스는 커녕, 한 때 개도국의 상징이라고 생각했던 오토바이 택시도 이 곳에서는 다른 나라 이야기인 것이다. 거기다 오토바이나 차량을 구매하여 운전하는 것은 이 곳 코이카 봉사단 규정에도 어긋나고, 무엇보다 나는 운전면허증이 없는 정말로 안타까운 이유가 있다.(서울에 있을 때는 지하철로 출퇴근 하는 것이 개인 자가용으로 출퇴근하는 것보다 더 편하다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면허증을 딸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이러한 이유에서 나는 늘 출퇴근을 걸어서 하고 있었고, 그 덕분에 음악을 들으며 여유롭게 산책하기라는 강제적인 취미 활동도 생겼다. 하지만 4시간 동안의 취미 활동에서 아무런 에피소드가 생기지 않을 순 없었다.
대형 메뚜기의 습격도 있었고, 모래 회오리 바람으로 인해 출퇴근 시간이 10분, 15분 정도 늦어지기도 하였다. 밤새 내린 빗줄기로 인해 안그래도 모래 길이라 도보가 쉽지 않은 길을 진흙탕으로 만들어, 옷이며 신발이며 진흙투성이로 털래털래 학교에 오기도 했고, 야 밤에는 동네에 돌아다니는 개들의 습격에 항상 한 손엔 돌멩이를 쥐며 경계하기도 하였다.
퇴근 후의 집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출근한 직후 학교에서도 늘 지쳐있었고, 목적지에 도착하면 당장 앉아서 쉴 곳부터 찾는 나였다. 그래서 교장은 나를 보며 자주 Hola, Amigo? Que tal? (안녕, 친구 잘지내지?) 의 인사 뒤에 Estas cansado? (많이 피곤하니?) 라고 물어보기 일 수 였다. 이러한 상황으로는 몸도 쉽게 상하고,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으며, 무엇보다도 봉사단원으로서의 품위 유지가 힘들다고 판단되어 10월 4일, 차코 입성 3개월 기념으로 자전거를 구매했다. 자전거는 중고로 할까, 새 것을 할까 고민하다. 2년 동안 충분히 타고 다닐려면 새 것이 나을 것이라는 주변의 권유에 새 것으로 구매하였다. 모든 물품 대부분이 수도 아순시온에서 가져오는 것이라 수도보다 물가가 비싼 이 조그마한 사막 도시에서는 역시 자전거 또한 수도보다 작게는 1.5배 심하게는 2배 이상 차이가 났다. 그래도 수도에서 가져오는 수고며, 운반비를 감안했을 때 여기서 사는 것이 낫겠다 싶어 이쁘고 튼튼해 보이는 초록색 자전거를 하나 샀다. 바구니도 달리고, 뒷 자석도 있는 정말 유용해 보이는 자전거였다. 한 가지 작은? 흠이 있다면 손잡이 브레이크 정도가 없다는 것. 그 조그마한 결함을 말고는 정말 완벽한 자전거였다. 이 자전거는 대신에 페달을 거꾸로 돌리면 바퀴가 멈추는 조금은 특이한 브레이크 기능을 가지고 있었는데, 탄자니아의 순구동생님의 말씀에 따르면 픽시라는 종류의 것이라고 했다. 오오 픽시라니! 신비스럽고 좋은 느낌이네 하면서 더더욱 내 자전거가 마음에 들어 갔다.
< 학교 출 퇴근 길, 가로등이 없어 특히 퇴근 길 50분 동안은 하늘 가득한 은하수 보는 재미에 산다. >
한 동안 자전거를 타고 여기저기 동네를 많이 돌아 다녔다. 일단 활동 반경이 넓어지니, 그 동안 날씨때문에 덥고, 멀어서 못 갔던 과라니 원주민 공동체 마을이며, 센트로며, 슈퍼며 한결 쉽게 다녀올 수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과 만나는 약속도 한결 쉽게 잡을 수 있었고, 여러모로 자전거를 산 것이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자전거의 내구성을 너무 쉽게 믿고 있었나 보다. 도시 대부분이 흙, 모래길로 포장이 안된 길이다 보니 무려 3 일만에 자전거가 숨을 헐떡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자전거 바퀴에 구멍이 났다.) 내가 조금 신나서 돌아다녔기로서니 3일만에 이렇게 고장이 나다니 화가 나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이 자전거를 구매한 가게에 가서 환불을 받거나 교환을 해볼까 싶어서 집을 나서는데, 그 때 친구가, 그 가게는 팔기만 하면 그 다음부터 책임을 지지 않는 다며 가봤자 신경질만 날 것이라고 하였다. 실제로 그 친구는 그 곳에서 세탁기를 사고 2일만에 고장이 났는데, 2일이나 지났으니 그 것은 소비자 과실이라며 환불, 교환은 커녕 수리도 안해주었다는 것이었다. 그 가게까지 집에서 걸어서 30분인데, 이 더운 날에 구멍난 자전거를 끌고 그 곳가서 화만 내고 다시 그대로 끌고 올 생각을 하니 아찔해졌다. 그래서 이 자전거를 어찌할 까 하다, 그냥 새로 사야하나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고, 너무나도 파라과이 답지 않은 생각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근데 마침 그 친구가 다행히 수리점이 있다고 하였고, 나는 학교가 끝난 후에 자전거를 끌고 그 곳에 가보기로 하였다. 하지만 수업 1시간전이었으므로. 일단 학교까지 그 자전거를 끌고 갔다 ( 수리점이 학교에서 더 가까운 이유도 있었다. ) 50분 흙길을 자전거를 끌고 가니 정말 죽을 맛이었다. 거기다 모래바람은 역풍으로 심하게 불어대고, 내 옆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현지인들이 구경이라도 난 마냥 물끄러미 보면서 유유히 지나갔다. 진짜 학교가 가까워 졌을 때는 자전거를 냅다 버리고 싶을 충동이 일 정도였다. 그렇게 거의 죽을 상을 하며 학교에 들어서자 학교 선생님들이 이러한 사정도 모르고 자전거를 샀냐며 다들 축하한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렇다, 이 날이 자전거를 타고 첫 출근을 할 날이었던 것이다. 이 날에 자전거가 고장나다니!!!) 그런데 왜 더 힘들어 보이냐며 물어들 보시고는 혹시 자전거를 못타냐고까지 말하시는 선생님도 계셨다. 내가 사정을 설명하니, 그 선생님들도 역시나 가게에서는 환불, 교환은 커녕 수리도 안될 것이니 수리점에 맡기는게 좋을 것이라하시곤, 선생님 중 한 분이 이러한 기계를 만지는 것을 좋아하니 가기 전에 그 분께 한번 보여주면 좋은 방법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하셨다. 나는 고맙다고 말씀드린 후 자전거를 학교 구석에 내 팽겨치고, 수업에 들어갔다. 애들도 내가 자전거를 가져온 것에 신기했는지 들어가자마자 인사보다 자전거 이야기부터 물어보더라. 자랑스럽게 자랑하고 싶었건만, 선생님 근데 왜 고장난 걸 샀어요? 라고 물어보는 통에, 순식간에 마치 고물상이 된거 같았다. 그렇게 수업을 끝내고 별 기대없이, 기계 만지는 것을 좋아하신 다는 Almiedes(알미데스) 선생님께 사정을 말씀 드려보았다. 알미데스 선생님께서는 한번 자기 집으로 가져와 보라며 한번 고칠 수 있는지 보자고 하셨다. 그래서 내팽겨쳐진 내 자전거를 다시 주섬주섬 일으켜 세우곤 선생님 집으로 들고 갔다. 선생님께서는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도구와 남는 재료가 있으니 고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시곤, 금방 뚝딱뚝딱하시더니 자전거를 새 것과 같이 만들어 놓으셨다. 나는 별 기대하지 않았던 선생님께 이러한 커다란 도움을 받아 미안한 마음과 함께 정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Muchas gracias (정말 감사합니다) 라며 자전거를 타고, 그 선생님 집을 나설 때까지 몇번이고 고개 숙여 감사 인사를 하였다. (생각해보니 고개 숙여 인사하는 것은 이 곳 문화와 맞지 않은데, 그 선생님이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난다.) 그리고 그 다시 제 기능을 찾은 자전거를 타고, 오늘 수고한 자신에 대한 보상이라며 초코우유 하나를 입에 물리고 집으로 룰라랄라 돌아왔다. 지금 껏 차께뇨에 대해 조금은 딱딱하고, 거리감을 느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물론 지금도 그 생각에는 크게 변함이 없지만, 알미데스 선생님의 작지만 큰 배려로 실제로는 다들 마음이 따뜻한 데 어떻게 서로가 서로에게 접근하는 지를 모르는게 아닐까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서로가 진심으로 마음을 열기까진 좀 더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다가가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어른스러운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아이러니 하게도 고장난 자전거 덕에 느낄 수 있었던 차코의 포근함에 마음까지 따뜻해지던 하루였다.
지금 자전거는 비록 모래가 잔뜩 끼여 색이 바래서 한 10년은 되어 보이지만, 잘 굴러다니며 내 발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다. 이름을 좀 지어서 좀 더 애정을 주고 싶은데, 뭘로 해볼까? 생각중이다. 좀 남미다운 느낌의 이름을 지어주고 싶은데... 이 큰 세상 속에서도 작은 키로 굴하지 않고, 최고를 향해 달리고 있어서, 내심 정이 가고 인생의 같은 편이라고 느끼고 있는 메씨가 좋을 것 같기도 하고? :-)
< 유난히 하늘이 이쁜 날, 저 깊고 풍성한 색감은 무슨 색이라고 정의해야 하나. 그냥 이쁘고 멋진 색 >
< 내 자전거 메씨(가칭)과 함께, 모래 바람을 피해 시 외곽으로 하이킹 나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