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후안

Los números [: 학습목표_ 도와 레에는 차이가 있다.]

Joan Ojeda 2013. 4. 22. 03:09











 무려 300달러나 들여서, 수도에서 전자피아노를 들여왔다. 코이카의 활동물품지원이 없었더라면 엄두 못내었을, 20달러도 벌벌 떠는 내가 이 피아노를 산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제발 제대로 된 음악수업 좀 해보자. 



 음악이라는 과목자체가 생소한 이 나라에서, 음악 수업을 제대로 받아 본 파라과죠는 손에 꼽을 정도이다. 아이들은 물론이거니와,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이라는 타이틀을 당당하게 달고 있는 이 곳 교사도 예외는 없다. 그래서 한국의 초등학생이라면 10초에 서너개는 거뜬이 말 할 가장 좋아하는 동요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다들 대답을 못해 당황해서 쩔쩔맨다. 






 오래 전에 내가 좋아하는 배불뚝이 나무 아래에서 어느 꼬맹이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때 한창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파라과이 전역을 강타하던 때라, 학교에서는 여기저기 꼬마카우보이들이 나타나곤 했는데, 그 아이도 예외는 없었던 같다. 뜨거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말춤이라는 공감대로 시작된 우리의 대화는 시간이 갈수록 흥을 더해갔고, 어느 새 주제는  다른 한국 노래까지 이어졌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그 꼬맹이 앞에서 국민동요 '학교종'을 열창하고 있었으니, 얼마나 신이 났었는지는 더이상 말 안해도 판단이 설 것이라 생각된다.




 가는 노래가 있으면, 오는 노래도 있는 법. 케이팝스타 뺨치게 학교종을 후딱 마쳐버린 뒤, 그 때 나는 그 꼬맹이에게도 동요 한 곡을 불러보라고 했었다. 그리고 그리 어렵지 않은 부탁이라 생각하고, 아빠미소 가득하게 진득하게 그를 쳐다보는데, 음....이라는 소리 외에, 영 그의 입이 열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 부끄러워서 그런 걸까? 아니면 부르고 싶은 노래가 너무 많아서 고민인걸까? 나는 우리 말곤 아무도 없으니, 후다닥 아무거나 불러보라고 재촉했더랬다.




 그렇게 해서 나온 노래. 외계어로 이루어 진 강남스타일이었다. 말춤을 추면서, 음정박자 다 틀려가며 열심히 불러대는 그를 보며 그 당시 나는 손뼉까지 치며, 재밌어했지만, 한편으론 왜 평범하게? 동요를 부르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지워지지 않았다. 보통 그 또래 꼬맹이들이 자신의 18번이라고 하면 푸른하늘이나 연날리가 정도가 아니던가. 그래서 헥헥거리며 마지막 로프질을 끝낸 그에게 파라과이 동요나, 전통 노래를 왜 부르지 않았냐고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 선생님, 파라과이 전통노래에는 가사가 없어요.'



- 그럼, 동요는? 어릴때부터 배워온 동요같은거 말야.



' 배워 본 적 없는데.... 정확히 아는 노래가 이 것(강남스타일) 없는데....'




 그의 나이 10살. 한국이라면 친구들과 손잡고 나비야든, 동네한바퀴든 흥얼될 나이인데...동요 하나 모른다니. 그 때, 나는 적잖이 놀랐던 것 같다. 글로만 봐오던 파라과이 예술교육의 부재를, 이렇게 무방비하게 한 꼬맹이의 입으로 직접 듣게 되었으니 말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이 음악수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 아마 그 때부터였지 않나 싶다. 아이가 툭 뱉은 한 마디가 나를 한번 더 흔들었음이 틀림없다.







< 6학년 수업, 어수선하게 보이지만, 배우려는 의지가 가득하다. 남미 특유의 능글거림과 사춘기적 성향으로 애를 먹을 때가 간혹 있지만, 이쁜 아이들이다. >






 전자피아노를 들고 교실로 들어가니, 안그래도 커다란 아이들의 눈이 더 커진다. 신기하겠지. 나도 처음에 엄청 신기했으니. 마침 수업이 시작되기 전이라, 전자피아노를 둘러싸고 금방 많은 구경꾼들이 몰려드는데, 팔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만지고 싶은 욕망을 가까스로 참는 것이 눈에 보인다. 어떤 녀석은 먹을 것도 아닌데, 입맛을 부지런이 다시고, 몇몇은 양손으로 열심히 피아노의 오로라를 느낀다. 난데없이 피아노 앞에서 20명의 행위예술이 펼쳐진다.




 종이 울리자, 다들 발걸음을 옮기고 제자리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발걸음 하나하나에 아쉬움이 묻어난다. 몸과 다르게 눈은 여전히 칠판 앞에 놓인 피아노를 쫓기 바쁘고, 인사도 하는둥 마는둥, 질문에 답도 하는둥 마는둥. 공책을 꺼내든 글씨를 지우든, 임팔라를 쫓는 사자의 그 것처럼 눈에 한번 담은 피아노를 좀처럼 놓아주지 않는다. 



- 얘들아, 피아노말고 선생님 좀 봐주라. 안그러면 다음 시간에는 피아노 안들고 온다.







< 그래도 봐달라니 봐주는 애들이 고맙다. 질문에 대해 엉뚱하지만 꼬박꼬박 대답도 잘하고, 하지만 아직도 피아노에 눈을 못떼는 애들이 많았다.>






 그 전까지는 그래도 수업에선 내가 서 있는 것만으로도 동기유발이 따로 필요없었는데, 피아노에게 지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자존심이 상했다. 못난 질투심에 농담어린 애교도 피우고, 반협박도 했더니, 그제서야 애들이 마지못해 나를 봐주기 시작한다. 수업 분위기가 조금은 집중력을 찾아가자, 이것저것 다시금 개념을 설명하고 확인하기 시작했다.



- 이 것을 뭐라고 한다고 했지?


'  선이요! '


- 그럼 이 선이 다섯개가 모이면, 뭐라고 하더라?


' 오선보요!


- 그럼 이 세로로 된 선은?



 벌써 배운지 꽤나 지난 것들인데도, 곧장 대답을 잘하는 아이들에 흐뭇해진다. 하지만 입과 다르게 아직도 피아노를 쫓는 40개의 눈들...그 동안 그 욕망 참는 것이 대견하여, 생각보다 일찍 피아노를 켰다. 아이들의 눈에 왠지 모를 기대감이 가득찬다. 그럼 이제 슬슬 노래 한곡 뽑아볼까?







< 내 수업의 3분의 1은 무조건 이론 수업이다. 이론이라고 해봤자, 악보라 어떻게 생겼고, 계이름에는 뭐가 있고 정도의 아주 기초적인 수업이니, 아이들은 그냥 마냥 신기한 듯 하다. >






 이번 주에 배운 곡은 숫자쏭이었다. 딱히 있는 노래는 아니고, 도 부터 높은 도까지가 그려진 악보에 가사를 1부터 8까지 붙인 곡이었다. 1이 가장 낮으니 가장 낮은 음을 내야하고, 8은 가장 높은 음이니 가장 높은 음을 내야한다는 뜻에서 구상한 곡인데, 음의 높낮이를 조절해서 내지 못하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특별히 생각한 곡이었다. 




 먼저 도의 음을 들려주고, 일Uno 라고 노래를 붙여 다시 한번 들려주었다. 그리고 레의 음에 이Dos, 미 음에 삼Tres....차례차례 높아지는 음을 보여주고, 따라하겠끔 지도할 생각이다. 가창 수업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효과적인 교수법은 역시 따라하게 하는 것. 천천히, 하지만 분명하게 음을 들려주고, 아이들의 참여를 유도했다.



- 얘들아 잘듣고, 선생님 따라해봐. 일Uno ~~~



' 일Uno~~~~~~~'



- 이Dos~~~~~~~



' 이Dos~~~~~~~~'....



 분명 피아노와 내 음은 한 단계 올라갔는데, 아이들의 음은 제자리거나 벌써 시까지는 올라갔다. 낮은 도부터 시작된 화음이 높은 도까지 계속 들린다. 음감이 없는지는 알고 있었으나, 이 정도일 줄이야... 하지만 예상 못한 바는 아니었던터라 크게 당황하지 않고, 도부터 차근차근 다시 지도하기 시작했다.



- 일Uno~~~~~~ 얘들아 일이라고 말하는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이 피아노랑 선생님 음에 너의 목소리를 맞춰서 따라하는게 중요해. 자, 잘 듣고 불러봐. 잘 들어봐.



  어수선해진 학급 분위기를 다시 한번 정돈하면서, 피아노 소리를 들려주는데, 조금은 답답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전자피아노의 도를 누르는 손가락에 힘이 들어간다. 이제는 피아니시모(매우여리게)로 시작했던 도가 지금은 포르떼(세게)의 도다. 



- 일. 일. 일.



-이. 이. 이.



 도저히 맞춰지지 않는 음과, 변동이 없는 음, 혹은 변동이 너무 심한 음이 한꺼번에 들리니 조금은 머리가 아파온다.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일까? 악보를 못보는 아이들, 눈으로 많은 것을 파악하는 아이들을 위해 친히 그림악보로 수업을 하건만, 시간을 좀 더 들였어야 하지 않을까 후회가 된다. 




 그러다 번쩍 떠오른 지혜. 코다이였다. 손기호까지는 힘들더라도, 손으로 그림악보를 허공에 그려보면서 하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진작부터 왜 이런 생각을 못했을까하는 가벼운 자책 뒤, 처음부터 다시 도를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까와는 달리 한 손으론 바닥을 가르치면서, 아이들을 다시 한번 집중시켰다.



- 얘들아, 잘 들어봐. 일은 여기야. 그리고 잘 들어봐. 이는 일보다 음이 높지? 그럼 내 팔은 어떻게 해야할까? 그렇지 조금 더 높게, 그 다음 삼은? 더 높게... ... 그럼 팔은? 그치 천장에 가장 가깝게 높이 높이. 알겠지? 그럼 이렇게 한번 같이 해보자.



 도레미파솔라시도에 맞춰서 소리를 내며, 팔의 높이를 점점 높여보는 이 교수법은 금방 효과를 발휘했다. 단순히 한 음만 내던 아이들이나, 음 높이가 들쭉날쭉 하던 녀석들의 음의 변화에 규칙성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음이 하나로 모아지거나, 제대로 찾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음이 더이상 낮아지거나 유지하지 않고, 높아지는 경향을 보이는 것은 괄목할 만한 성과였다.




 아이들이 내는 소리에 변화가 생기자, 신이 난 나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이제는 높은 도에서 낮은 도까지 차례대로 피아노를 들려주며, 소리를 따라 내도록 지도하였다. 



- 자, 이제 천장에서 바닥으로 내려갑니다. 팔!!!! 칠!!!! 육!!!!....



 아이들이 곧장 따라하기 시작했다. 조금은 긴장해서 굳어있던 내 얼굴에, 서서히 미소가 번지기 시작한다. 



- 자, 이제 모두 일어서 큰 소리로 노래를 불러보자!






 

< 6학년이라 그런지, 일어나서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에 부끄러워하는 것같다. 이제 자기들도 다 컸다 이거지. 여기 6학년이나 한국의 6학년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






 그렇게, 피아노를 도입해서 아이들에게 절대음감을 가르치는 첫수업이 끝이 났다. 물론 개별적으로 많은 지도가 필요한 아이들이 수두룩하고, 이렇게 배운 음감이 다음 시간까지 유지될꺼라는 보장은 없지만, 아이들에게 음의 변화가 있다는 것만을 느끼게 해주고, 또 그 것을 소리내게 했다는 것에서 이번 수업은 충분히 학습 목표에 도달한 것 같다. 내가 있는 동안,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 것을 배워가고, 얼마나 많은 것에 눈을 뜨게 될지는 알 수 없으나, 모든 아이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동요 하나는 가질 수 있게 하자는 올해 내 음악 수업 목표에 한 걸음 내 딛은 것 같아, 뿌듯하다. 다음 시간부터는 제대로 된 동요를 하나씩 하나씩 가르쳐 볼 생각이다. 오늘처럼 아이들이 즐겁게 잘 따라와줬으면 좋겠다.











* Los números [: 숫자들, 내가 아이들의 절대음감을 위해 계이름에 숫자를 붙인 악보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