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후안

Cambio de ocupacion [: 학교 유일의 미술 교사에서 지역 유일의 음악 교사로]

Joan Ojeda 2013. 4. 4. 11:06



* Cambio de ocupacion [: 전직]











 우리 학교에는 예술 과목이 없다. 미술뿐만 아니라 음악 수업도 이 지역 어린이들에게는 아주 생소한 경험이다. 3교시만 되면 울려퍼지던 아이들의 리코더 소리도, 시시때때 바뀌던 교실 뒤의 아이들의 작품도 이 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아이들이 노래를 배우고, 작품을 만드는 것은 학교 축제나, 학예회를 준비할 때가 고작이다. 









 작년 7월, 내가 선임이 진행하던 음악 수업이 아닌, 미술 수업을 진행한다고 했을 때 학교에서는 한바탕 작은 소동이 있었다. 재작년까지 선임이 가르치던 음악 수업은, 우리 학교에서 처음이자, 유일한 예술 교육이었던 것이다. 언어적인 문제도 있거니와, 개인적으로 음악보다는 미술 쪽에 자신이 있었던 탓에 미술을 가르치겠다고 기관장과 협의한 것이 아이들에게 음악을 접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를 막아버린 꼴이 되었다.










 가혹한 환경과 열악한 주위 상황으로 인해 우리 아이들은 다른 지역의 그들보다 조금 더 거친 편이다. 물론 착하고 순하기 순하지만, 작은 일에 금세 폭력적으로 변하거나 또래들과의 대화 중에 어감이 센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 나는 이러한 문화가 예술교육, 특히 음악 교육의 부재에 있지 않을까 판단했다.











 그래서 올해부터 다시 음악 수업을 진행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기관장과 대상 학년, 수업 내용, 수업 시간에 대한 협의를 했고, 개학 다음날인 2월 12일부터 당장 수업을 시작하기로 하였다. 부드럽고 밝은 음악을 듣고 느끼며, 신나는 음악과 함께 에너지를 긍정적으로 발산하면서 우리 아이들은 맑은 감성과 좀 더 나은 소양을 지니게 될 것이다.








< 동료 단원 기관을 방문했더니, 꼬맹이가 자기 몸만한 기타를 가지고 자유자재로 연주하고 있었다. 그 연주 솜씨도 연주 솜씨지만, 애들이 이런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부럽던지. 우리 꼬맹이들도 악기 하나 쯤은 다룰 수 있으면 좋을텐데... 아쉽기만 했다. >









 막상 음악 수업을 진행하려니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할 지 감이 오지 않았다. 전에 선임이 했었던 음악 수업이 이 학교의 처음이자 유일한 교육이다보니, 음악 교과서는 커녕, 음악 교육과정도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유치원때부터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다양한 음악을 접해온 한국 아이들과 다르게, 이 곳의 아이들은 음악이라고 하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남미 특유의 그 것을 따라부르고 그에 맞춰 몸을 연신흔들어 대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음악에 있어서 어느 것이 옳고 그르다고 할 순 없지만, 다양하고 좋은 음악을 듣고 느끼고 배우는 것은 아이들의 정서뿐만 아니라, 창의력 향상에도 아주 중요하다. 








< 수도에서 본 발레 공연. 아순시온은 한 국가의 수도답게 문화 생활을 영위하기 상대적으로 좋은 환경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차코와 같은 지방에서 이와 같은 공연을 감상하려면, 공연장부터 지어야한다. 한마디로 무척 어렵다. >










 먼저, 수업을 본격적으로 진행하기 전에 아이들의 음악 수준, 음악에 대한 태도 등을 파악하기로 마음 먹었다. 아이들의 기초적인 음악 이론 수준을 알아보기 위해 몇 가지 퀴즈를 준비해갔고, 박자감과 음감을 알아보기 위해 챈트도 몇 가지 만들었다. 










 음악 퀴즈는 아주 단순한 것이었는데, 악보는 줄이 몇 개가 있는지, 높은 음 자리표는 무엇인지, 도레미파솔라시도를 읽을 수 있는지 등이 바로 그 것이었다. 아이들은 첫 오리엔테이션 시간부터 단순한 쪽지 시험을 시행하자 무척이나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외국인 선생님이, 그 것도 음악을 가르친다고 하니, 수업이 방방 뜨며 즐기고 노는 그런 시간이 될 것이라 기대했던 것이 틀림없다. 수업 분위기가 방방뜨는 것은 나에게 어림 없는 일. 다소 엄격한 표정으로 '시작' 이라는 단어를 내뱉자, 아이들은 고개를 숙이고, 열심히 답안지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악보의 줄이 한 개에서 일곱 개까지 다양한 답이 나왔으며, 심지어 악보나, 높은 음자리표 개념 자체를 모르거나, 도레미파솔라시도를 처음 들어보는 아이들도 나왔다.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대다수의 아이들이 음악적 개념에 관해서 전혀 모른다고 판단이 서니, 순간 눈 앞이 깜깜해졌다. 기초부터 차근차근 가르쳐야 겠다. 해야 할 일이 많겠군.













 시험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어 가자, 박자감과 음감을 확인하기 위해 준비해 온 챈트를 아이들에게 보여주며 가르치기 시작했다. 챈트는 아주 단순했는데, 한국에서는 수업하기 전 분위기 환기용으로 많이들 사용하는 것들이었다. 예를 들면, 교사가 ' 준비 되었어요? ' 라고 가벼운 멜로디와 함께 선창하면, 학생들은 '준비되었어요~' 하고 비슷한 멜로디로 후창하는 것이다. 그리고 박자감을 위해 중간 중간 손뼉으로 박자치기 하는 것도 넣었다.







 밝은 멜로디와 함께, 얼핏보기에 재미난 율동으로 보이는 박자치기가 감미가 되니 시험으로 인해 흐리멍텅했던 아이들이 눈이 초롱초롱 빛나기 시작한다. 자 그럼 해볼까? 나는 밝고 큰 목소리로 아이들에게 천천히 따라해보라며 과장된 제스쳐로 아이들의 호응을 유도했다. 아니나 다를까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부르며 박자치기를 하는데 그 모습이 마치 어미새를 기다리는 아기새 처럼 보여 그냥 귀엽고 사랑스럽다. 그런데 오잉? 챈트가 나의 그 것과 꽤나 다르게 들린다. 다시 한번 시켜보고, 또 시켜보는데 아이들의 음이 들쭉날쭉이다. 게다가 박자치기의 박수는 왜이리 엊박자가 날까.... 그래서 이번에는  천천히 천천히 정확하게 음을 짚어주고, 박자도 같이 쳐보며 진지하게 연습해보았다. 하지만, 아이들의 진지한 표정과 달리 챈트는 계속 산으로 간다. 얼핏들으면 엊박자의 박수때문에 트로트 리듬같이 느껴지기까지 하다. 뭐가 문제일까? 박자와 음에 대한 감각이 떨어지는 걸까?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을 따라부르고, 그에 맞춰 막춤을 추는 거 보면 딱히 그래 보이지는 않는데... 내 테스트가 조금 잘못된 것일까? 













 막상 음악 수업을 하려고 저지르고 보니, 학교에 음악 수업을 할만한 교구가 없다. 아이들에게 다양한 음악도 들려주고 싶고, 아이들하고 같이 노래도 부르고 깊은데, 멀티미디어를 활용한 수업은 여기서는 꿈도 못 꿀 일이고, 조그마한 피아노 는 커녕 멜로디언 하나 없다. 당장 음악 수업에 활용할 수 있는 것은 선임이 두고 간 리코더와 내 목, 내 손바닥. 이렇게 3개뿐이다. 근데 이마저도 리코더를 가르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아이들이 음악 이론을 이해시키거나, 음악적 감각을 조금이라도 키워줘야 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옵션은 내 몸뚱아리 하나뿐인 것 같다. 














당분간은 열심히 내 몸을 굴러야 겠다. 어릴 때, 커다란 전지에 가사만 써두고, 두 손바닥 열심히 쳐가며 노래를 불렀던 기억이 난다. 그래 길은 있으니깐, 너무 욕심내지 말자. 다 잘되겠지.








< 나는 나름 유연한 몸뚱아리를 가지고 있응께. 애들에게 재미난 율동이나 잔뜩 가르쳐줘야 겠다. 이게 바로 짜꼬스타일 맨몸 수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