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후안

Publico y privado [: 으보뻬이가 사는 방식]

Joan Ojeda 2012. 11. 13. 23:52

*  Publico y privado [: 공과 사]

 

 

 

 

 

 으보뻬이.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한 과라니 인디오 공동체 마을이다. 필라델피아 센트로에서 걸어서 10분만 가면 도착하는 이 곳은, 지역 주민 대부분이 과라니 인디오들이다. 거의 모든 인디오들이 다 그렇듯 생활 환경은 다른 파라과이 마을에 비해 많이 열약하다. 상수도가 없어 빗물을 받아 우물 생활을 하는 것은 물론, 전기도 다른 곳에 비해 자주 나가고, 화장실 또한 나무 칸막이로 만든 푸세식 화장실이라 조금이라도 날씨가 후끈한 날에 가면 악취가 진동한다.

 

 

 

 하지만 이 곳에는 다른 파라과이 마을에서는 볼 수 없는 많은 모습들을 가지고 있는데, 마을에서 선거로 뽑은 젊은 추장이 있다는 것이 그렇고, 마땅히 놀 곳이 없어 애들이 새총을 가지고 사냥을 하며 논다는게 그렇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잡은 고개 덜렁거리는 꼬마새를 선물이라며 수줍게 내미는 아이들도 이 곳 마을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나는 이 마을을 좋아한다. 마을 한가운데 있는 멋지게 뻗어있는 아름드리 나무도 마음에 들고, 까만머리 까만 눈의 외국인을 보며 신기하게 쳐다보면서도 쑥쓰럽게 인사하며 도망가는 순진한 마을 사람들도 마음에 든다.

 

 

 

 이 마을에는 조그마한 공동체 학교가 하나 있다. 공동체 이름을 딴 이 학교 이름은 으보뻬이학교. 학교는 마을 공터에 위치해 있는데 어느 마을학교가 다 그렇듯 작다. 하지만 특별하게도 이 학교는 작아도 너~~무 작다. 처음에 이 공동체에 학교가 있다는 것을 알고 찾아나섰을 때, 학교를 눈 앞에 두고도, 못알아보고 몇번이나 헤맸을 정도였으니깐.

 학교 건물을 밖에서 보면 그냥 일반 가정집같다. 방 하나짜리 조그마한 가정집. 실제로 건물 하나에 교실은 하나이고, 긴 면의 가로 길이도 채 3~4미터가 되지 않는 듯하다.게다가 날씨가 30,40도를 오르내리는 이 날씨에 에어컨은 커녕 선풍기도 없어 교실은 늘 후끈후끈 사우나같고, 이러한 학교에 딸린 부속 건물이라곤 나무로 만든 칸막이 푸세식 화장실하나. 과연 학교로서 기능이나 제대로 할까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학교에서 학생을 많이 받기에는 어려움이 있다.실제로 이 학교에는 유치원, 1학년 이렇게 두 학년밖에 존재 하지 않으며 2학년이 된 아이들은 당연히 다른 학교로 강제전학을 가야한다. 이렇게 전학을 가게 된 아이들은 어른 걸음으로 30,40분은 걸어가야 도착하는 주립 초등학교에 매일 같이 공부하러 가는데, 자기 덩치만한 책가방을 들고 낑낑거리며 삼삼오오 모여서 마을로 돌아오는 애들을 보자면 참 그 모습이 기특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수업 중인 으보뻬이 아이들. 1학년 콩알이들이 저렇게 초 집중할 수 있는 건 다 쌤의 지도력 덕 아닐까?>

 

 

 

 

< 신은 신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배움의 열의가 가득한 아이들, 최고의 무대를 만들자! >

 

 

 

 

 

< 아이들을 지도하고 계시는 펠리시아 선생님 >

 

 

 

 

 

 이 열약한 으보빼이 학교에는 마을 유일의 교사, 펠리시아 선생님이 있다. 올해로 교육 경력 20년정도 되신 베테랑 교사로, 매년 방학 중에도 마을 공동체 청소년들을 위해 이런저런 교육 프로그램을 해올 만큼 교육에 대한 열의와 비전을 가지신 분이다. 나는 가끔 시간이 나면 이 학교에 들러 펠리시아 선생님과 주스 한잔씩 나눠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그 선생님의 확고한 교육관에 놀란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봉사단원으로서도, 그리고 채 교육경력이 5년이 되지 않은 신규 교사로서도 많은 것을 배우고 또한 자극이 된다. 그래서 나는 늘 이 마을을 방문할 때면 주스1L를 하나 사서 덜렁덜렁 손에 들고 이 선생님부터 찾아나선다.

 

 

 

 

 

 

 이 선생님이 어느 날, 나에게 마을에 종강식이 있으니 한번 놀러오지 않겠냐고 초대했더랬다. 나는 방학중이기도 하고 특별히 약속도 없어서 당연히 그러겠다고 하였고.

 

 그 날짜가 바로 토요일 저녁. 불토였다. 우리 학교에서도 종강식이 금요일 저녁에 이루어졌었기 때문에 저녁에 시행한다는 것에 대한 놀라움은 덜했지만, 토요일이라는 것은 뭔가 묘하게 흥분감을 주었다. 얼마나 화려하게 하기에, 얼마나 성대하게 하기에 토요일저녁에 이 것을 한단 말인가!! 거기다 펠리시아 선생님이 아사디또(소고기 꼬치 구이)도 구워먹고, 마을 사람들도 와서 보고 해서 재밌는 마을 축제가 될 것이라는 말까지 하시니, 이 학교 종강식에 대한 나의 기대감은 점점 커져갔다.

 

 

 

 

< 내가 가면 제일 먼저 반겨주는 우리 라울 (오른쪽 붉은 혀의 꼬맹이) 귀여운 녀석 :-) >

 

 

 

 

 당일날, 메씨를 타고 울퉁불퉁한 길을 따라 공동체 마을에 도착했다. 축제에 흥을 더욱더 돋구게 해주기 위해 깜짝 선물로 수도에서 공수해 온 아이들에게 만들어 줄 풍선아트용 풍선과 공기주입기도  가방에 넣고서.

그런데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후끈후끈 축제 분위기는 커녕 마을이 조용하다. 집집마다 의자에 앉아 떼레레를 마시는 가족들만 조금씩 보이고, 불타는 토요일 저녁과는 거리가 굉장히 있어보이는 풍경이다.

 

' 아직 축제 전인가? '

 

하고 시계를 보니, 이미 축제가 예정되어 있던 시간이 10분이나 지나있다. 나는 다들 학교에 모여 있어서 그러겠거니 하며 발을 재촉했다.

 

 

 

 

 

 

 

 근데 내 눈 앞에 펼쳐진 학교 앞 공터의 모습은 칠흙이었다. 사람은 커녕 불빛하나 보이지 않았다. 직감적으로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끼면서도 마을 어딘가에서는 종강식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헛된 희망을 버릴 수 없었다. 메씨를 세우고 마을 학교 공터에 서 있는 내 앞으로 쓰레기를 찾아 헤매는 동네 개들만 왔다갔다 거렸다. 나는 펠리시아 선생님께 전화를 걸었다.

 

 

 

 

- 선생님, 저 Joan 입니다. 질지내시죠? 그나저나 오늘 학교 종강식있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아, Joan ! 반가워요!!! 잘지내지요? 아... 오늘 종강식 날짜가 변경되었어요....'

 

 

 

 

 

응? 변경되었다고? 왜? 갑자기 허탕해졌다. 우리집에서 여기까지 거리가 얼마인데... 이 야밤에... 나왔건만.. 이유가 매우 궁금해진다.

 

 

 

 

- 엥? 언제로요? 왜 변경된 거죠?

 

 

 

 

 

 

' 오늘 마을에 15살 생일파티가 있어서요. 다들 거기 간다고 날짜가 내일 저녁으로 바뀌었어요.

미안해요. 메세지를 보냈어야 했는데 깜빡했네요. 내일 다시 뵈요!'

 

 

 

 

 

 15살 생일파티???????? 생일파티가 있어서 학교 행사를 연기했다고라고라고라???????

 뭔가 행사를 연기해야할만한 불가피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마을 한 꼬맹이의 15살 생일파티와 날짜가 겹쳐서 급하게 학교 행사를 연기했다는 선생님의 설명에 조금은 혼란스러워진다.

 

 물론 파라과이에서의 그 것은 한국과는 달리 15살이 되던 해의 생일이 한 사람에게 있어서 아주 중요한 날이다. 한국으로 따지면 성년식정도가 된다고 할까? 이 때 생일파티를 가장 성대하게 여는데, 이때는 가족, 친구는 물론이고 멀리사는 친척, 심지어 동네 마을 주민까지도 같이 생일을 축하하면서 밤늦게까지 어울려논다. 이를 감안한다면 가족 행사리스트 중 중요성은 돌이나 백일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아.... 네 알겠습니다. 내일 다시 뵙죠!

 

 

 

 

 

 

 당황스러움에 더듬더듬거리면서 전화를 마쳤다. 그러면서도 어느 정도 스스로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납득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괜시리 웃음이 난다. 아. 적응하고 있구나.

 

 

 

 

 

 

 

 

 

 

 

 메씨를 타고 오면서, 교장선생님과의 통화내용을 다시한번 곱씹어 본다. 학교 학생도 아니고, 마을의 동네 한 꼬맹이의 생일이 있어서, 학교 행사를 연기시켰다. 한국에서는 상상이나 할 수 있었던가? 심지어 한국에서는 동네 사람들은 커녕 자기 가족 생일이나 가족 행사도 일때문에 참석 못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일을 더 중요시 하는 이러한 행동방식을 보며 프로라고 칭송할 때도 있지 않은가. 어느 직장에서 우리 딸이 15살이 되어서 생일파티를 해줘야 하는데, 회사 일정을 변경해달라고 하면 이해하고 변경해 줄 수 있을까? 오히려 미친 녀석이라 소리 들으며 그 따위로 일할꺼면 사직서쓰고 나가라고 혼이 날께 뻔하다. 그런데 이 학교는 자신의 학교 학생이었던 꼬맹이의 15세 생일파티를 위해, 학교 종강식을 연기시켜주다니. 행여 종강식때문에 15세 생일파티가 소홀해질까봐 배려한 것이 아닐까?

 

 

 

 

 

 

 

 나는 헛물켜고 이렇게 돌아가지만, 일보다는 사람을 중요시하는 파라과이 인디오들의 생각하는 방식에, 그리고 이렇게 일을 굉장히 유연하고 강단있게 추진하는 행동 양식에 또 한번 기가 죽는다.

 

 

 

 

 

 

 

 

 

이게 으보뻬이가 사는 방식이구나.

 

 

 

 

 

 

 

 그리고 다음 날, 으보뻬이 학교의 종강식은 아무렇지도 않게 조촐하지만, 화기애애하게 잘 치뤄졌다.

 

 

 

 

 

 

 

< 전등 2개만을 사용하여 만든 조그마한 무대, 하지만 애들 표정은 월드스타급이다 :-) >

 

 

 

 

 

 

 

< 뱅글뱅글 손잡고 돌기만 하는 거지만, 아이들도 마을사람들도 나도 깔깔거리며 웃게 된다 >

 

 

 

 

 

 

< 학교 종강식을 보러 온 마을 사람들, 자기가 앉을 의자는 셀프! 저기 학교 앞 아름드리나무가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