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지는 이야기[2]
바람이 불지 않는 고요한 주말 아침이면 나는 한국에 있는 가족들, 그리고 친구들과 인터넷 전화를 한다.전화로 오랜만에 목소리도 듣고, 한국 사정도 듣고 안부도 묻고 좋은 시간을 보낸다.
늘 마무리는 화이팅해라! 건강해라!로 끝나긴 하지만. :-)
그나저나, 저 문장에서 이상한 점 하나를 발견하지 못했는가?
자세히 한번 훑어보라.
그렇다, 전화하는 시기이다.
왜 하필이면 바람이 불지 않는 고요한 날에 전화를 할까?
궁금하지 않은가?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갑자기 바람이 불지 않으면 정신이 몽롱해져, 한국 생각에 미쳐버리도록 그리워 진다던가.
요런 날이면 괜히 정적감에 전화 통화를 하고 싶어질만큼 감정이 센치해져서 그런다던가.
근데, 생각보다 내가 바람이 불지 않는 고요한 날에 전화를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바로 여기 인터넷 환경 때문이다.
여기는 바람만 살랑 불어도 인터넷이 메롱메롱 거리는데.
그 때문에 인터넷 전화는 바람이 불지 않는 고요한 날만 제대로 걸 수 있다.
그래서 여기 와서 인터넷 전화를 걸기 위해 생긴 습관이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날씨를 살피는 일이다. 바람이 현재 부는지, 그리고 이 바람이 불지 않는 상태가 오랫동안 지속될 것인지. 무슨 옛날 무협영화 주인공처럼 가끔은 손가락 끝에 침을 묻혀서 바람의 상태를 확인 하곤 한다. 그러다 바람이 오랫동안 안 불겠다가로 판단이 되면 인터넷 전화를 거는데, 이렇게 해서 전화를 하는 시간이 보통 길어야 10분, 짧으면 20초다. 어쩔 때는 여보세요! 만 일방적으로 하다가 끝날 때도 많다. 그럼 제대로 통화한 적이 한번도 없냐고? 물론 그건 아니다. 10분 동안 엄청나게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을 때도 있었고, 아주 가끔 정말 운이 좋을 때는 1시간이 넘도록 전화 통화가 가능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전화 통화 한 사람은 여기 파견된 이후로 딱 3명 밖에 없다. (그 마저도 숨이 끊어질 듯 말 듯, 목소리가 들릴랑 말랑 하는 위기의 순간은 수차례 넘겨야 가능하지만.)
그래서 그런지 언제나 통화 시간은 나에게 너무나도 소중하고, 긴장되는 시간이다. 오랜만의 통화를 해서, 하고 싶은 말은 너무나도 많은데, 언제 끊길지 몰라 간이 콩알만해졌다가 커졌다가를 반복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한국에서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이런 열악한 인터넷 환경에 짜증도 많이 났지만,(진지하게 인터넷 전화 신청을 해약하려고도 했었다. 돈은 돈이고 전화도 잘 안되어서...하지만 그 마저도 인터넷 환경때문에 연결이 제대로 되지 않았더랬다....) 지금은 그져 목소리라도 들을 수 있음에 감사하다.
이 10분의 통화가 내가 여기서도 혼자가 아님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니깐
물도 그렇고, 음식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고,
정말, 여기는 여러모로 많은 것을 애틋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