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후안

Clausura [: 이란 이름의 동네축제]

Joan Ojeda 2012. 11. 5. 07:04

* Clausura [: 방학식]




 

 방학. 방학은 누구에게나 특별하다. 산이고ㅡ, 바다이고ㅡ, 떠나면서 충분히 쉬고 즐길 수 있는 기간이라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이 방학이라는 두 글자는 글자 자체에도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는 왠지 모를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어느 누구도 방학을 가져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없다. 다들 학창 시절에 머리 지끈 거리는 기말 고사가 끝나자 마자, 다가 올 방학에 두근 거렸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쉬는 시간 마다 친구들과 책상 앞 뒤로 앉아서 방학 때 어디를 놀러가자 하며 괜히 연습장에 이것저것 끄적거리며 깔깔거렸던 기억, 부모님들과 맛있는거 잔뜩 먹으며 시원한 강바람을 맡으러 갔던 기억,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며 특별한 경험을 했던 기억, 혹은 아침마다 신경쓰이는 시계 알림 소리없이 푹~~ 낮잠 자면서 행복했던 기억들.....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던 방학은 당연히 신나는 것이리라. 그래서 누구든 방학! 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괜히 기달려지고, 설레이는 것이 아닐까?  나에게도 이 방학이라는 것은 언제나 즐겁고 유쾌했던 것이었고, 늘 기다려왔던 것이었다. 그런 청량한 첫! 방학이 나에게 이 곳 파라과이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방학식이라고 하면, 보통 단축 수업을 떠올린다. 1,2교시 정도까진 수업을 하다가 3,4교시에 방송을 통한 교장선생님의 훈화말씀이 있고, 그리고 담임 선생님께 이런 저런 방학에 대한 계획과 과제에 대한 설명을 듣다가

 

 

 

' 자, 다들 방학 잘보내고 건강하게 2학기때 만나자! '

 

 

 

라는 말씀과 동시에 와~!!! 하고 그 때부터 방학이 시작되는!

그래서 한국에서 보통 방학식은 딱히 특별한 무언가를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냥 의례적으로 하는 주의사항, 인사말고는. 물론 그 방학이 시작되는 날!!! 이라는 특별함이 부여되어 세상 어느 축제보다 가장 신나고 아름다웠던 행사로 기억되고 있지만...사실 방학식에 무엇인가를 했다라는 기억은 잘 없다.

 

 

 

 

 

 

 방학은 파라과이에서도 신나는 일. 이런 날을 기념하기 위한 방학식 또한 존재한다. 사실 이 곳은 방학식이라기 보단 일종의 학예회 같은 느낌이 강한데, 한 학기 동안 공부로 인해 쌓인? 스트레스를 푸는 장 같은 느낌이 강하다. 그래서 여기 파라과이에서의 방학식은 뭔가 특별한 듯하다. 다들 방학이 시작되기 3주전부터 방학식 이야기로 씨끌벅적하다. 그 날도 어느 날처럼 떼레레를 마시면 선생님들과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 날의 주제는 요즘 제일 핫한 이슈, 바로 방학식이었다.

 

 

 

 

 

 

 근데, 방학식 이야기를 선생님들과 신나게 하는 와중, 교장에게 뜻밖의 제의를 받았다. 그 제의인 즉슨. 나에게 방학식 기념 공연을 해달라는 것이었다.나 그때까지만해도 방학식은 한국의 그것과 똑같거나 아님 아주 미세한 차이만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방학식에 무슨 기념 공연???? 이게 무슨 상황인지 파악이 안되면서 또 한번 컬쳐쇼크가 내 뇌세포를 덮친다. 하지만 내 뇌의 분주함과 다르게 다른 선생님들의 표정을 살펴보니, 아주 침착한 표정으로 너도 당연히 해야지! 하는 눈빛이다. 빨리 si(네)라고 이야기하라는 무언의 압박감 속에 또 한번 방황하다가,  피할 수 없으면 즐기자! 라는 왠지 모르는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차피 이 번이 이 번학기 마지막 일이 될꺼라는 자기 소망과 더불어 그 것이 사실이 된 것 같은 자기 최면에 빠지자,, 왠지 재밌을 것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그리고 당연히 나 혼자 하는게 아닐꺼라는 안도감도 들기도 해서, 나는 망설임없이 흔쾌히 'Porque no?! (왜 안되겠어?) 하며 대답해버렸다.

 

 

 

 

 

 이 것이 나의 평온한 삶을 다시 흔들게 될 것이라는 것은 꿈에도 모른채. 막상 대답하고 보니, 방학식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방학식은 언제인지, 방학식에 내가 해야할 기념공연은 무엇인지, 누구랑 하는지, 뭘하는지 내가 방학식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고 또 서두르고야 말았구나....조금은 신중하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며 교장선생님께 방학식 일정부터 하나하나 여쭤보았다.

 

 

 

- 그나저나 방학식 언제부터 시작해요?

 

 

' 언제부터라면? 시간? 날짜? '

 

 

- 날짜는 11월 2일이고, 시간이요! 아침이겠죠? 조금 천천히 시작하나요?

 

 

 

' 시간은 7시반이야. 그러나 너는 공연 준비하니깐 한 7시까지는 와야겠다. 물론 저녁이고 '

 

 

 

 

 저...저...저녁??? 뭐가 또 물론 저녁이야;;;; 방학식이 저녁에 한다니 생각치도 못했다. 훈화말씀 한마디 하시고 방학과제 알려주고, 주의사항 좀 듣고 안녕~! 방학 잘보내! 이게 아니었단 다가 말인가? 하긴 그럼 기념 공연이 들어갈 틈이 없지...저녁에 방학식이 열린다는 사실은 내가 가지고 있던 방학식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개념부터 뒤흔들어 놓았다. 나, 생각보다 개념이 유연하지 못한 사람일지도.

 

 

 

 

- 그럼 방학식때 뭐하는데요?

 

 

 

 

 나름 선생님이었는데... 방학식이 뭐냐는 유치원생적인 질문부터 시작해본다. 왠지 모르게 부끄럽지만 어쩌랴....여기 방학식은 한국이랑은 정~달라보이는데...오히려 나는 유치원생보다 더 못한 개념을 지니고 있을지 모른다.

 

 

 

 

 교장은 조금은 한심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그래 넌 한국에서 온지 얼마 안되었지라며 하나하나 설명해준다.

 

 

 

' 여기는 방학식때 각 학년 당, 혹은 그룹 별로 공연을 기획해서 보여줘. 다 같이 즐기는 거지. 저녁때 조금은 선선할 때 시작해서 학부모들이랑 같이 공연을 감상하는데, 물론 공연은 학생들이 기획하기도 하고 선생님과 같이 하기도 해. 공연의 내용은 춤도 좋고, 연주도 좋고, 노래도 좋다. 물론 가능하다면 연극도 좋고. 이해했어?'

 

 

 

 한결 설명을 들으니, 이해가 된다. 그럼 공연은 각 반 담임쌤이 자기네 아이들을 가지고 이것저것 준비한다는 것인데... 그럼 나에게 공연제의를 한 것은 누구랑 하라고 공연 제의를 한거지? 설마 나혼자 단독 공연을 하라고 한 것은 아니겠지? 걱정이 슬슬 된다.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며 생각하면서도 괜한 노파심에 교장선생님께 다시금 질문을 해본다. 이 또한 모를 일이니깐 확실하게 해두는게 좋겠지.

 

 

 

- 네ㅡ 이해했어요, 그럼 저는 담임도 아니고, 담당하고 있는 아이들도 없는데 어떻게 누구와 공연 준비를 하면 될까요? 혼자하는 건 아니죠???

 

 

 

 교장은 껄껄 웃으면서 당연히 너 혼자해도 괜찮다는 농을 하신다. 진짜 농담이야? 아님 진심반 농담반이야... 순간 덜컥 심장이 내려앉았지만, 이어지는 말씀을 들으니 조금은 마음이 놓인다. 교장선생님 말씀에 따르면, 저번 선임은 수업하던 반 아이들을 선별해서 리코더 연주를 했다고 하신다. 너도 가능하면 아이들을 하나둘 모아서 리코더 연주를 준비해 보는게 어떻냐고 제안하시는데, 나는 여기서 음악을 가르치는 것도 아니고 미술을 가르치고 있으니 뭔가 썩 내키진 않는다. 그리고 한동안 음악 수업을 받지 못했던 아이들을 모아서 연주를??? 고개가 저절로 절레절레 흔들어진다. 게다가 지금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너무 적지 않은가....설상가상으로  악보는 커녕, 우리가 가지고 있는 건 리코더 10개가 전부다.....물론 짧은 시간에 스파르타로 몰아붙이면 어떻게 동네 공연 정도 수준으로 이끌어 볼 순 있겠으나, 워낙 뜨랑낄로를 즐기는 이 꼬맹이들에게 스파르타가 오히려 역효과가 날 것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 즐기는 방학식을 위한 취지에는 맞지 않아보인다. 나도 방학식을 즐길 수 있는 무엇을 해보고 싶고. 그래서 나는 대충 한번 생각해보겠다고 한 뒤, 알아서 해보겠다고 말하곤 계획 구상을 시작했다.

 

 

 

 

 

 먼저 대상인 아이들이 가장 큰 문제인데, 새로 모집하긴 힘드니, 지금 데리고 있는 신문부 아이들을 꼬드껴서 공연을 하기로 하였다. 간단히 이 신문부에 대해 소개를 하자면, 내가 학교에서 지도하고 있는 동아리이다. 주로 중학생과 초등학생 고학년으로 구성되어 있고, 선임의 프로젝트를 이어받았다. 이름은 신문부 이지만, 지금 내 능력의 한계로 신문부 활동보다는 다른 활동을 더 많이 하고 있다. 내가 신문부를 맡으면서 한 것이라곤,  수박 열매를 가지고 와서 수박 텃밭 가꾸기 (물론 날씨때문에 내년에 다시 시도하기로 했고), 신문부를 위한 학교 전체 문학 콘테스트 기획( 이 것 또한 잦은 학교 일정 변경으로 무산되었다.) 그리고 이번에 제안한 방학식 공연......어느 것 하나 신문부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은 하나도 없다. 나중에 개명하자고 나오지 않을까? 점점 신문부의 정체성을 잃어가지 있어 스물스물 걱정이 된다. (경훈이형 죄송해요.)

 

 

 

 

 

 그리고 공연할 내용은 시간 부족과 신문부 아이들이 적극적인 의견 개진으로 춤으로 결정하였고, 노래는 좀 특별하게 한국 노래 중에 하나를 선정해서 해보기로 하였다. 요즘 애들사이에서 인기인 강남스타일 부터, 동요, 민중가요까지... 무엇이 좋을까....아이들과 의논하다가 노래는 민중 가요인 '벗들이 있기에'로 선정하였다. 우리학교가 아미스닫(우정) 학교이기도 하고, 내가 이 노래 춤도 알고 있으니 일석이조 아닌가. 노래가 결정되지 마자 우리는 바로 연습을 시작하였고, 매주 한번씩 1시간씩 보여서 춤연습을 하였다. 아이들은 어렵다고 징징대면서도 한국 노래에 맞춰서 음악하는 자신이 신기한지 연신 따라하기 정신이 없다. 노래와 배열을 정하고, 어느 정도 완성되어 가자, 아이들 사이에서는 어떤 의상으로 하면 좋을지 한바탕 논의가 일어났다. 나는 당연히 그 주제를 너희들이 알아서 결정해보라며 넘겨주었고. 20~30분의 격렬한 논의끝에 낸 결론은 청바지에 흰 티셔츠...오 깔끔하게 잘 어울리는 것으로 잘 정했네 칭찬을 하면서, 왜 이렇게 정했냐니깐 다들 똑같이 가지고 있는 것이 그 것밖에 없었단다. 음...그럼 논의에 상관없이 선택할 수 있던 선택지는 한정되어 있었던 거였네;;;; 시간 낭비했었군. 칭찬도 어찌 보면 좀 어이없었겠다. 뭐 의상은 아무렴 어떠나 싶다. 그렇게 하나하나 차근차근 방학식을 준비하던 우리였다.

 

 

 

 

 

< 우리 공연 의상! :-) 흰 티셔츠에 청바지 그리고 별3개 페이스페인팅! 그리고 풍선 >

 

 

 

 

 

 그리고 방학식이 되었다. 7시 반부터 시작될 방학식에 학교가 또 한번 복닥복닥한다. 작고 아담한 무대는 물론이고, 무대 공연을 할 아이들의 연지곤지 화장에, 전통 의상 입은 중학교 꼬맹이들까지 돌아다니니 뭔가 동네 축제 같아서, 기분이 설레인다. 한편, 우리 신문부 아이들은 한껏 긴장해서 대기실에 모여드는 데, 의상도 확인하고 춤도 모르는 부분을 서로 물어보며 스스로 척척이다. 선생님이 변변치 못하니 아이들이 벌써 일찍히 철이 들어 독립적이게 변한게 아닌가 싶다. 뭐 결론적으로는 성공이네. 알아서 자기주도적으로....그래도 조금은 씁쓸하다. 하하.  우리의 공연 순서는 마지막에 두번 째. 애들은 공연 전에 마지막으로 한번 더 맞춰보고 싶다고 성화다. 그래 연습을 위해서라면 백만번이고 같이 해줄 수 있다. 나는 내가 가져온 조그마한 엠피3를 켜면서 즐기면서 하자고 말했다. 그랬더니 아이들이 활짝 웃으면서, 네! 선생님이라고 말하는데 공연의 결과와 관계없이 좋은 추억이 될 것같아 기분이 좋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기실에 음악에 맞춰 연습을 하고 공연 시간에 맞춰서 무대 옆에서 보기로 한 뒤 각자 공연을 즐기러 갔다. 나 또한 아이들에게 붙여줄 금색 스티커를 하나 장전해서 공연을 즐기러 나갔고.

 

 

 

 

 

 

 공연을 보러 나가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공연을 즐기고 있었다. 공연 내용은 파라과이 전통 춤에서 부터, 과라니어 연극( 표정이랑 몸짓보고 대충 술 취한 사람들을 화제로 한 개그라는 것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합창 등 다양했다. 공연은 무르 익어 가고, 진짜 마을 축제인지, 어디에선가 나온 맛있는 냄새로 운동장이 가득하다. 이리저리 둘러보니, 저 운동장 한 켠에서는 아사디또 ( 소고기 꼬치 구이 ) 와 엔빠나다 ( 파라과이 음식으로 만두랑 비슷하다 ) , 그리고 케이크와 파이를 먹고 파는 사람들로 분주 했다. 나 또한 축제 분위기를 맘껏 몸으로 느끼며 돌아다닌다. 근데, 저 멀리서 나를 발견한 4학년 꼬맹이 조나일이 다가와서 말을 건다.

 

 

 

 

 ' 선생님 저 춤어땠어요? 멋졌죠? '

 

 

 

 - 응, 너 정말 춤 잘추더라!

 

 

 

 

 방금 나와서 공연을 못봤는데, 동글동글한 눈망울 앞에, 미안해 못봤어라고는 차마 못말하겠다. 그래서 한껏 과장해서 춤을 잘추더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려주며 보여주니 앞에서 으쓱으쓱 한다. 그 모습이 하도 귀여워서, 가만히 있어보라고 한 뒤 주섬주섬 주머니에서 내가 가져온 금색 스티커를 꺼낸다. 그리고는 눈 옆에다 하나 붙여주었다. 마치 페이스 페인팅 한 거 같이 반짝반짝 거리는데 축제 분위기에 딱 맞다. 하늘에도 별이 반짝, 지금 니 얼굴에도 별이 반짝!

 

 

 

 

 - 이건 춤을 너무 잘 춘 조나일, 너를 위한 선물이다.

 

 

 

 

 아이는 스티커를 받았다는 기쁨에 방방 뛰며 좋아한다. 순진한 녀석! 귀여워서 볼 한번 꼬집어주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몰려 온 아이들이 저마다 자기 얼굴을 가르키며 스티커를 붙여 달라고 난리다. 어허, 이 꼬맹이 군단들이...난 예상치 못한 공격에 조금은 당황했지만 나는 교사이다. 당장 줄부터  세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아까 스티커를 준 조나일에게 넌 이제 선생님 비서이니 아이들 줄 세우는 것 도와달라는 부탁을 한다. 조나일은 옛설 하더니 줄을 한 줄로 이쁘게 세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조금은 정돈된 한 개 사단의 꼬맹이 군단을 차례차례 눈 옆, 코, 이마에 하나씩 붙여주며 이쁘다 이쁘다 한다. 물론 이마에 붙인 아이들에겐 울트라맨~! 이라는 팬서비스도 한번 해주고.

 옆에서 맹하게 있다 갑자기 내 비서된 조나일은 혼자서 어느 순간 비서 놀이서 심취해, 제법 비서답게 행동한다. 그리고 스스로 비서 규칙을 만들더니 비서는 항상 선생님과 함께 있어야 한단다. 그러면서도 이 꼬맹이는 비서일을 하는 그 순간까지도 자기 눈 옆에 있는 붙은 스티커 떨어질 지 불안한지 연신 물어본다.

 

 

 

 

 

 ' 선생님 이거 아직 붙어 있지요? 안 떨어졌지요? '

 

 

 

 

 

 스티커 하나에 저렇게 행복할까. 수업 시간 말고도 이렇게 스티커로 애들과 어울릴 수 있고, 아이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감사하다. 그리고 손톱만한 스티커 하나도 소중해하면서 연신 행복해 하는 파라과이 아이들의 순진함이 너무나도 귀엽다. 이 순진하고 사랑스러운 녀석들. 한창을 아빠미소로 아이들을 바라보는데 조나일이 옆에서 갑자기 눈을 동글동글하게 뜨며 나에게 질문이 있다며 손을 잡아 당긴다. 여전히 한 쪽 손은 자기 눈 옆의 스티커를 꼭꼭 누르고 있다.

 

 

 

 - 조나일, 왜? 무슨 일이야? 아직도 스티커 잘 붙어 있어.

 

 

 

 

 스티커를 연신 만지작 거리는 모습에 너무 귀여워 이 순진한 꼬맹이를 위해 스티커를 한 두개더 붙여줄까 싶던 차였다.

 

 

 

 ' 선생님, 근데 이거 떼서 칭찬 통장에 붙여도 되요? '

 

 

 

- 응?........................

 

 

 

 

 

 스티커 한 두개 붙여주는 건 재고해야겠다. 물론 순진한 녀석이라는 말도 취소다. 자슥들. 뭔 생각을 못하게 해요. 이거 급작스러운 스티커 방류에 스티커를 교류하는 시장까지 생길 판이다. 요상한 방향으로 생각이 비상한 아이들에 조금은 당황한 나는 이 사태를 어떻게 타개할까 하다. 이 것은 금색이라 칭찬통장에 붙여도 숫자에 포함안 될것이라고 말했다. 칭찬통장에 쓰고 있는 별은 빨간색과 파란색이었으므로. 그러자 아이들은 조금은 실망하면서도 스티커 자체에 다시 즐거워 하기 시작했다.

 

 

 

 

 

 스티커에 대한 소문은 운동장 전체로 조금씩 조금씩 퍼져나가, 뒤뚱거리는 유치원생부터, 8학년 꼬맹이들까지 선생님 스티커 붙여달라고 몰려왔다. 줄을 서서 한명씩 한명씩 스티커로 치장을 한 아이들이 생겨나자 공연과는 별도로 운동장 한켠에는 작은 이벤트가 열렸다. 스티커 페이스 페인팅!!! 스티커를 붙인 아이도 좋아하고, 붙은 스티커를 보며 어른들도 즐거워 한다. 물론 붙여주는 나도 행복한 미소가 가득하다.

 

 

 

 

 

 

 스티커를 붙이며 애들고 떠들다보니, 어느 덧 공연 순서가 다가왔다. 나는 공연 준비를 하기 위해 무대 옆으로 갔는데 벌써 아이들은 무대 옆에서 의상 정리와 함께 애매한 동작에 대해 서로 의견을 나누며 연습하고 있었다. (그렇다, 나도 공연을 같이 하게 되었다. 얼마나 훈훈한가 사제가 함께하는 공연이라니!!! )비교적 차분한 에벌린에 비해, 조금은 긴장되어 보이는 딸리아를 보며 우리는 다같이 긴장하지 말고 즐겨보자고 화이팅을 한 번 한 뒤, 심호흡을 하고 무대에 올라갔다. 무대에 올라서니 보는 것에 비해 훨씬 좁다. 하지만 무대 위에선 저 멀리 학교 너머 공터까지 보였고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다들 자리에 서서 준비를 하자 음악이 흘러나왔다.

 

 

 

 

 낯선 리듬에 관중들은 술렁술렁하면서도 호기심을 보인다. 그리고 무대 위에 있는 작은 동양인을 보고 여기저기서 손가락 가르키며 신기해 한다. 여기 공연에서는 선생님이 무대에 올라 공연하는 것이 아주 드문 일인데, 게다가 그 외국인 선생님이 아이들과 같이 오르니 일종의 문화 충격이었을리라. 반면 우리 아이들은 예상했던 일인지 담담하다. 음악이 흐르고, 신나게 춤을 추는데 다들 연습했던 것 보다 훨씬 더 잘한다. 점점 음악이 클라이 막스에 가까워 지자  흥이 더해지고, 서로 추임새까지 넣어주며 무대를 즐기기 시작한다. 그리고 우려했던 개인기를 보여주는 파트에서도 연습할 때 부끄러워 했던 것과 달리 엉덩이와 어깨를 열심히 흔들어 대며 춤을 추는데, 얘네들 무대 체질이 아닌가 싶다.

 

 

 

 

 3분이 어떻게 흘렀나 싶게 후딱 시간이 지나고, 무대 아래로 내려오는데 아이들 모두 자기가 해 낸 공연에 만족한 듯 했다. 다들 상기된 표정이다. 나는 준비한 롤리팝을 주면서 아이들에게

 

 

 

- 얘들아 같이 춤을 추게 되어서 기뻤어. 고마워

 

 

 

 

하고 말해주었다. 아이들은 갑작스러운 롤리팝 선물에도 깜짝 놀라했지만, 그 것보다 선생님의 말에 쑥쓰러운 지 피식하고 웃곤

 

 

 

 

' 아니예요. 우리도 재밌었어요! 고마워요! '

 

 

 

 

라고 대답해주었다. 아 훈훈한 사제지간. 무대 옆에서 이렇게 닭살 스러운 드라마 장면을 연출하고 있는데 저 멀리서 아이들 군단이 다시금 우르르 몰려온다. 스티커인가? 하면서 다시금 호주머니를 뒤적뒤적 거리는데, 예상과 달리 애들은 한껏 신난 얼굴로 아까 췄던 춤에 대해 이야기 하기 시작한다

 

 

 

 

 

'선생님, 진짜 춤 잘추시네요!! '

 

 

'선생님 내년에는 춤가르쳐주세요!!'

 

 

'선생님 강남스타일 춤 아시죠?!! 전 그 걸로!!!'

 

 

 

 

 

 다들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칭찬세례를 쏟아 붇는데, 스페인어로 들어도 한국어로 들은 것 마냥 몸둘바를 모르겠다. 하지만 하나하나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말하는데 너무 사랑스럽다.

 

 

 

 

 

- 오냐, 얘들아! 고맙다! 내년에도 재밌게 공부하자! 방학 잘보내고!

 

 

 

 

 

 나는 이제 거의 끝나가는 방학식을 보며 하나하나 애들하고 방학 인사를 나눈다. 그리고 이쁜 아이들을 위해 다음 학기는 더 열심히 준비해야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의자를 옮기다, 가끔은 학부모와 사진도 찍기도 하고 (한류 스타 납셨다.하하.) 그리고 남은 아이들과 선생님과 함께 하나하나 정리하는데, 저 멀리서 학부모 몇 분이 나에게 다가오신다. 아 이번에도 사진인가? 이번에는 어떤 포즈를 해주지? 하면 이것저것 여러 옵션을 생각하고 있는데, 그 학부모님 손에는 핸드폰이나 카메라가 없었다.

 

 

 

 

 

'선생님, 저녁 식사 못 하셨지요? 이거 드세요'

 

 

 

 

 

 학부모님의 내민 손에는 그 대신 비닐 봉지가 하나 쥐어져 있었다. 어벙벙하게 비닐 봉지를 받아 열어보니, 그 안에는 엔빠나다 2개, 파이 2조각, 그리고 케이크 한 조각이 담겨 있다. 아직 따끈따끈한 것을 보니 방금 세심하게 하나하나 만들어서 준비해주신게 틀림없다. 방학식 준비에 아이들을 위해 스티커를 붙여주거나, 풍선을 만들어 주고, 공연 연습에 바빠서, 저녁으로 빵 조각 하나 먹지 못하고 축제를 즐기고 있던 나는 축제 내내 굶주린 배를 조리고 있었다.(돈이 들어 있는 가방은 교장실에 있었고, 교장실은 문이 잠겨 있었다.)  어떻게 내가 저녁을 안먹고 배고픈 걸 아셨을까?.... 역시 세상의 어머님들은 표정만 봐도 밥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아시나? 세심한 배려에 너무 감사하다. 근데 한창 음식이 담긴 봉지와 그 분의 얼굴을 번갈아 보다가, 문득 공연 전에 교장선생님께 나 배고프다고 징징거린 것이 떠올랐다. 그러자 민망함에 얼굴이 빨개졌다. 그렇다. 단순한 배려라기 보단 옆에서 이 장면을 목격하시고 들고 오신 것이 틀림없었다.  하하. 안 그래도 가난하고 불쌍한 봉사단원 이미지가 굳어지고 있었는데, 이건 거의 쐐기를 박는 에피소드가 되어 두고두고 이야깃거리가 될 것이다...에휴... 대단하게 도와주러 온건 아니지만, 오히려 이렇게 도움을 많이 받는 입장이 되다니... 하지만, 배고픔 앞에 장사없다고, 내 허기는 민망함을 금방 이겨내었다. 나는 너무나도 감사한 마음에 몇번이고 고개 숙여 감사하다고 맛있게 먹겠다고 인사하였다. 

 

 

 

- 감사히 맛있게 먹겠습니다!!

 

 

 

 

그러자 학부모님들께서는 오히려 한 껏 미소를 지으시며

 

 

 

 

' 오히려 저희가 더 감사합니다. 공연도 잘보았고, 풍선도 너무 고맙습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며 말씀하신다. 이번 방학식은 나도 너무 재밌게 즐기면서 했던 것이라,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도 아닌데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조금은 더 열심히 했었어야 했나 하며 부끄러워진다. 그리고 한편으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이렇게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 줄 수 있는 이 일에 너무 감사하다. 나는 학부모님들과 방학 잘보내시라는 인사를 나눈 뒤, 마저 방학식 행사장 정리를 마무리 짓고, 그 음식은 아직까지 행사장 정리를 도우고 있던 꼬맹이들과 나누어 먹었다.

 

 

 

 

 

 

 

 

 

 

 

 오늘 하루 너무 나에겐 길었던 하루였다. 정리를 하고 집에 가려고 메씨에 올라타서 핸드폰을 열어보니 11시다. 갑자기 몸에 피곤이 싹 몰려왔다. 아 피곤하다. 바지며 셔츠며 한번 훑어보는데, 모래 바람에, 땀에 뒤 범벅되어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이런 지도 모르고 좋다고 애들 안아주고 방학 잘보내라고 하고 있었다니...하하하하. 피곤하고 만신창이가 된 나였지만, 아이들의 미소하나하나, 즐거웠던 춤사위, 그리고 마지막 학부모님들의 작은 정성까지 떠오르자 다시금 마음은 너무나도 따뜻하고 가벼워졌다. 그리고 그 청량한 마음을 품고 메씨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이번 학기.

 정말 처음이다 보니 많이 망가지고, 사고도 많이쳐서 몇번이고 무너질 뻔 순간이 많았다. 내가 여기서 뭐하나 왜캐 힘든 고생을 사서하고 있나 고민도 많았다. 그런데, 이렇게 한 학기 마무리를 훈훈하게 보내니 다 보상받은 기분이다. 왠지 더 고생해도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힘을 또 에너지 삼아 이번 방학과, 다른 학기도 힘차게 보낼 수 있겠지?

 

 

 

 

 

 

 

 

 오늘 따라 유난히 달이 밝다.

 

 

 

 

 

 

< 저 콩알만한 무대도 20명은 거뜬하다. 4학년 꼬맹이 리허설 중 :-) 몸살림이 예사롭지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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