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후안

Modelo chiquitito [: 꼬맹이 모델되다]

Joan Ojeda 2012. 10. 28. 03:24

 * Modelo chiquitito [: 꼬맹이 모델]





 

 12월 21일 자선 연말 음악회가 아순시온에서 거대하게 열린다. 한인들이 주축이 되서 열게 될 이 음악회는 전액 수익금이 바로 여기 차코 필라델피아 아미스닫 초등학교에 도서실 조성에 쓰이게 될 예정이다. 주최는 코이카도, 대사관도 아닌 우리 마음맞는 이들.

 

 

 마음 맞는 이들을 간단히 소개 하자면,  열악한 파라과이 교육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모인 한인청년 자원봉사자 모임이다. 순수한 목적으로 모인 단체인데다, 워낙 개방적이고 털털한 단체라 교민들은 물론이거니와 코이카, 굿네이버스, 기아대책본부 등 그 출신들도 다양하다 . 이들은 다들 사는 곳도 제 각각이고, (저 밑에 오리엔딸부터 저 북쪽 나 있는 차코까지) 각자의 일에 바쁘다보니 많은 것을 할 수 없을 것 같지만, 늘 교육 인프라 조성에 고민하고 또한 그 고민에 대해 아이디어가 생겼을 경우 즉각적으로 행동으로 옮기는 놀라운 추진력 덕분에 많은 프로젝트를 해왔고, 앞으로도 많은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다.

 

 

 

 내가 이 모임을 만나게 된 건 정말 우연이였다. 파라과이에 온 지 얼마 안되어 알게 된 첫 교민이었던, 고운 누나는 나의 차코 생활을 안쓰럽게 여겨 수도 오면 놀러오라는 말을 입 버릇처럼 하던 사람이었다. 워낙 사람 좋고, 부담없던 누나였기에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고 자주 안내려가는 아순시온에도 불구하고, 아순시온에 오랜만에 내려가던 날 누나 집에서 여차여차 머물게 되었다. 근데 그 날 마침, 마음 맞는 이들의 모임날이었고, 나는 거기서 마음맞는 이들의 활동을 처음으로 목격하게 되었다. 듬직해 보이는 경천이형, 보는 사람을 편하게 하는 웃음을 지닌 연주 누나, 바른 생활 청년 같았던 예강이, 시원스럽게 일을 쓱싹쓱싹 해가던 보희, 아이들을 다루는데 교사인 나보다 훨씬 능숙하고 전문적으로 보였던 전영누나, 그리고 뭔가 예술적인 풍미를 풍겼던 애경 누나까지... 사람 하나하나 마다 범상치 않았다. 그래서 그 날 마음 맞는 이들이 페인트 칠 봉사활동을 하러 나간다고 했을 때, 나는 새벽에 도착해서 피곤했지만 흔쾌히 가고 싶다고 졸라 졸졸 따라나섰다. 이런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할지도 궁금했고, 여러 일로 인해 지쳐있던 차코 생활에 조금은 자극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무엇보다 이 사람들 하고 있으면 왠지 모를 긍정의 에너지를 받을 것 같다는 생각때문이었다. 실제로 봉사활동 페인트칠은 힘든 작업이었지만, 하하하호호호 웃으면서 재밌게 일을 마무리를 지었고, 평생 이야깃거리가 될 여러 에피소드라는 선물을 받은 하루가 되었다. 그리고 그 힘으로 나는 차코에서 또 한번 힘을 낼 수 있었고.

 

 

 

 

 그 마음맞는 이들이 선택한 수혜지가 이번에는 바로 우리 학교. 차코 필라델피아 아미스닫 초등학교이다.

이번 수혜지로 선정되게 된 것도 정말 우연이었는데, 어찌 보면 여기 파라과이 와서 이러한 우연이라는 것이 정말로 삶을 크게크게 바꾸는 것 같다. 나는 여기 파견된 이후로 변변치 않은 놀이 문화 하나 없는 차코 어린이들을 보며 항상 안타까움을 가지고 있었는데, 우리 학교 꼬맹이와의 우연한 대화가 아이들에게 도서관을 지어주고 싶다는 목표를 가지게 하였다.(그 대화 내용은 추후에 공개하겠다.) 그리고 우리 기관 선임으로 계셨던 경훈이형의 훌륭한 프로젝트인 이동 도서관 사업은 이러한 내 목표를 더더욱 절실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언어, 예산, 적응이라는 현실적 한계에 부딪혀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 몰라 늘 주변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있었고, 마침 마음맞는 이들의 고운 누나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번 프로젝트의 수혜 대상으로 선정되는 영광을 받게 된 것이다.

 

 

 

 

 하지만 수혜 지역 조정자라는 역할이 무색하게 나는 마음 맞는 이들의 프로젝트 모임에 자주 참석하지 못했다. 아니 거의 참석하지 못했다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이겠다. 차코라는 지역이 모임의 주 장소인 수도 아순시온과는 물리적으로 8시간이나 떨어져 있어서 참가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음악회에 관한 부분에 있어서는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해 늘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멀리서도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는 법. 나는 홍보 영상 비디오에 우리 학교 아이들의 모습이 필요하다가는 요구에, 비디오에 들어갈 문구와, 영상에 들어갈 사진을 찍는 업무에 착수 했다. 문구는 서정적이게 쓰되 솔직하게, 그리고 영상에 들어갈 사진은 차코의 실상을 잘 보여주는 사진과 희망적인 아이들의 모습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한번도 해 본적이 없는 작업들이라, 특히 예술적인 것들을 요구하는 것이기에... 조금은 부담이 되었지만 멀리서도 작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쁜 마음으로 글을 적고, 사진을 찍어 나르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퇴근하고 저녁을 먹은 후, 글은 조금씩 보면서 하나하나 수정해 갔고, 사진은 매일 같이 학교 가는 길에 들고 가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얼마 후, 기다리고 기다리던 애경 누나(비디오 감독님)에게서 요구 사항이 담긴 콘티가 도착했고, 콘티에는 한 명의 똘망똘망한 꼬맹이를 주인공으로한 여러 포즈의  예시 사진이 첨부 되어 있었다. 이렇게 친절하게 예시 사진까지...세심하셔라! 근데 우리 꼬맹이들이 잘 재현할 수 있을까??? 조금은 걱정되었지만,이제부터 문제는 어느 꼬맹이가 이 것을 소화할 수 있을까였다.

 

 

 

 

 

' 아 모델이 필요하겠는데....'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모델에 대한 생각을 하고 해봤지만 마땅한 꼬맹이가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어느 때와 같이 보충반에 앉아 스페인어를 끄적끄적 거리고 있었는데, 입으로는 선생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만 머리로는 오로지 모델 꼬맹이를 누구로 해야하나 하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누가 좋을지, 어느 꼬맹이가 쑥쓰러움 없이 끈기있게 잘할지....모델 섭외도 쉽지 않은데 설상가상으로 시험기간이라니...과연 사진 촬영이 제대로 가능할지도 조금은 걱정이 되었다. 시험 기간이라 섭외가 성공한다 한들, 수업 중에 사진 촬영으로 빼오기도 그렇고, 시험이 끝나고 사진을 찍기에는 날이 어둑해져 사진이 잘 나오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아이스크림 좋아하는 귀여운 루까스를 섭외해서 맛있는거 사주면서 주말에 나오라고 할까 고민하던 중, 보충반에 어느 한 꼬맹이가 들어왔다. 동글동글하고 똘망똘망한 얼굴!!! 나는 보자마자 저 꼬맹이가 모델로 딱 맞는 피사체가 될 것임을 확신했다. 게다가 여기에 온 아이라면 보충반아이일터, 보충반 아이들은 시험을 오전에 다 치르고 오기 때문에 선생님께 샤바샤바만 잘 하면 빼오는 것도 문제가 없을거이니 이건 뭐 완벽 그자체가 아닌가. 일이 이렇게 술술 풀리다니. 나는 섭외에 앞서 담당 보충반 쌤인 밀리안에게 먼저 내 의사를 타진했다.

 

 

 

- 밀리안(보충반쌤!), 나 여기 학교 도서실 사업때문에 홍보 동영상 만들껀데 모델 꼬맹이가 한명 필요해.

 

 

 ' 아 진짜?? 그래 누구를 쓸껀데? '

 

 

 그 전부터 도서실에 대한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이야기를 많이 나눠왔던 밀리안이라 그 친구는 도서관 사업보다는 홍보 비디오를 찍는다는 사실에 더 놀라워 하는 듯했다.

 

 

 

- 남자 꼬맹이가 필요한데, 저기 앉아있는. 지금 막 온 저 녀석! 사진 찍어도 될까?

 

 

 '그럼, 물론이지. 당연하지.'

 

 

- 그럼 여기서 몇장만 찍고, 밖에 좀 데려가서 사진 좀 찍을께.

 

 

' 문제없어! '

 

 

 

 이렇게 밀리안과 모종의 계약이 끝난 후, 그녀는 그 꼬맹이를 나지막히 불렀다. 그리고 학교 홍보 동영상에 너가 모델로 사진을 몇개 찍을껀데 괜찮겠냐고 아이에게 물어보았다 아이는 좀 놀란 눈치이긴 하였으나, 흔쾌히 그러겠다고 대답하고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그 녀석을 보며 너 잘 생겼으니 모델해도 잘하겠다며 한 껏 자신감을 붙돋아 준 후 애경누나가 보여준 콘티를 보여주며 이렇게 할 수 있겠냐면 나즈막히 물었다. 자신감에 고양된 아이는 당연히 큰 소리로 Siiiiiiiiiiiiiiii(네!!!)라고 대답했고.

 

 

 

<어렵사리 구한 꼬맹이 모델! :-) 활짝 웃는 모습이 똘망똘망하다! :-)>

 

 

 그렇게 우리의 촬영은 시작되었다. 요리 조리 각도도 바꿔보고, 손짓 발짓도 조금씩 변화를 줘본다.

 

 

- 그래 좋아. 조금 더 눈을 올려봐. 나~ 지금 생각하고 있어요~

 

 

' 이렇게요?'

 

 

- 그래 굳! 좋아! 이뻐! 다시 한번!

 

 

' 이렇게요?'

 

 

 

 어설픈 사진작가와 어설픈 첫 모델이 만나니 촬영하는 모습도, 그리고 분위기도 뭔가 어설프다. 2% 아니, 한 20%부족한 느낌이라고 할까. 본인들은 엄청 심각했으나, 그 것을 보고 있는 주변 아이들은 그 어설픈 모습을 보곤 재밌다며 깔깔웃는다.

 

 

 

 

 - 자, 저기 화장실에서 부터 이 종이비행기 들고 뛰어와

 

 

 

' 저~기서 부터요?'

 

 

 

 

 - 응! 천천히 뛰어와야해!

 

 

 

 

' 이렇게요?!'

 

 

 

 

 

 

- 자 이제 종이 비행기 날려봐!

 

- 비행기를 쳐~다 봅니다~

 

- 여기 보면서 웃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처음에는 어설프던 나도 그 꼬맹이도 나름 작가다워지고, 모델다워진다. 아이도 점점 자신감이 생겨서 부끄러워 하지 않으니 서로 한결 여유로워지고, 사진이 더 잘 나오는 것 같다.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조금 더 웃자. 혹은 이거 너무 이쁘게 잘나왔다. 잘했다 하면서 피드백을 하는데, 나 중에는 그 꼬맹이도 이건 좀 마음에 안드네요 한번 더 해요! 하면서 제법 프로다운 이야기도 한다. 당황스러우면서도 당찬 모습이 귀엽다.

 

 

 

 

  해가 뉘엿뉘엿 지어갈 때쯤 다른 꼬맹이들도 저멀리서 보고 있다가 사진 촬영이 막바지에 이르자, 자신들도 모델이 되고 싶다며 사진을 찍어달라고 아우성이다. 종이비행기를 들고, 어느 잡지에서나 나올만한 여러 포즈를 취하는데 나도 덩달아 아이들이 기분 맞춰 준다고 사진을 찍어준다. 옆에서는 모델 꼬맹이가 선배랍시고 손은 더 높게, 눈은 거기 보면 안돼 하면서 다른 꼬맹이들 조언을 해주는데 저절로 웃음이 난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 까, 사진 촬영은 끝났고 다들 자신이 찍힌 사진을 보면서 한바탕 크게 자지르진다.

 

 

 

 

 ' 선생님, 저 내일도 사진 찍어주세요. 오늘은 머리 스타일이 별로 였어요 '

 

 

 ' 선생님 저두요. 옷을 좀 이쁜 걸로 바꿔야 겠어요.'

 

 

 

 

 찍힌 사진에 재밌어 하면서도 조금은 아쉬웠는지 다들 사진을 보며 한마디씩 한다. 나는 다들 이쁘게 나왔어 이보다 이쁠 수 없다며 칭찬해준다. 그러자 한껏 다시 한번 포즈를 취하며 싱글벙글 하는 아이들이다. 단순한 녀석들.히히.

 

 

 

 

 

 

 

 

 

 

 

 집으로 와서 비디오에 쓸만한 사진을 하나하나 고르는데, 사진 하나하나가 너무 이쁘다. 굳이 비디오가 아니더라도 평소에도 좀 이렇게 찍어볼껄 하는 후회감도 조금 든다. 

  그나저나 비디오를 위해선 무엇부터 골라야 할지 모르겠는데? 일단은 다 들고 가볼까? 나보다는 예술적인 눈을 가진 애경 누나가 더 잘 선별하겠지.'

 

여기서 애들 미술을 가르치는 선생님임에도 불구하고, 예술에 관대한 나였다. 

내 눈엔 내가 찍은 이 백여장에 가까운 사진이 다 거기서거기로 다 이쁘다.

 

 

 

요렇코롬 이쁘다.

 

 

 

 

< 비행기 날리는 우리 꼬맹이, 귀여운 녀석! 니 꿈을 펼쳐라~!>

 

 

 

 

< 이건 콘티에는 없었지만, 그냥 내가 해보고 싶어서 있다고 뻥치고 찍었다.ㅎ 베스트 샷!>

 

 

<다같이 찍자!! 이랬는데 제대로 얼굴 나온 애가 한 녀석도 없네.ㅎㅎ>

 

 

<와~! 끝났다!!! 귀여운 녀석들!!>

 

 

 

[아순시온 자선 연말 음악회 홍보영상링크]

  http://www.youtube.com/watch?v=A4hom-iz8JU&feature=pl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