Último [: 마지막은 늘 아쉬운 거야]
마지막 수업을 했다. 늘 마지막은 아쉬움을 남기지만, 오늘 수업이 이번 학기 마지막이라는 사실은 왠지 모르게 나에게 안도감을 주었다. '아 이제야 끝이 났구나. 탈도 많고 말도 많았던 첫 학기 수업을 무사히 마쳤구나.'
그래서 그런지 마지막 수업을 들어가는 내 발걸음은 가볍기만 했다. 저절로 콧노래도 나오고, 몸은 저절로 들썩들썩 했다. 근데 이게 정말 티가 많이 났나 보다. 지나가던 선생님들이 오늘 무슨 좋은 일 있냐고 물어들 보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딱히 말하기도 민망하고 해서 그냥 넘어 가고 싶은데, 선생님들은 그러고 싶지 않은 눈치다. 먹잇감을 발견한 늑대와 여우들의 눈빛이라고 할까? 내가 주구장창 Nada (아무것도 아니예요) 라고 말하면서 쿨하게 미소를 지어 보지만,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계속해서 쳐다본다.
‘조안!(여기서 내 이름) 너 애인 생겼구나?’
'오늘 너네 집에 혹시 파티 있니?'
'너 생일인가?'
부터 시작하여,
' 오늘 월급날이니? '
까지, 누가 선생님들 아니랄까봐 정말 다양한 방면으로 추리한 질문들이 쏟아져 나온다. 질문은 끊임없이 쏟아지고, 내가 '아니야'라고 말하는 것도 지쳐갈 때쯤 점점 산으로 가는 질문에 당황하여 그만 실토하고 말았다.
- 오늘이 마지막 수업이잖아요. 이제 곧 방학이고
선생님들은 생각보다 별거 아닌 이유에 '에이 뭐야~' 하는 반응들이었지만, 충분히 이해했다는 반응이었다. 그대들도 분명 방학들을 내심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리라. 방학 얘기가 한번 나오기 시작 하자 다들 벌써 방학이 내일로 다가온 마냥 신이 나서 방학때 무엇을 할 것인지로 떠들썩 해진다. 그리고 한창을 저번 겨울 방학에는 무엇을 했다고 다들 열을 올리더니 이야깃거리가 떨어졌는지,
‘조안 넌 방학때 뭘 할 예정이야?’
라며 나에게 물어본다.
- 나는 아마 일도 있고 해서 필라델피아에 머물거 같아요
나름, 다 차코 사람들이라 여행이네 휴가네 생각하고 있지 못할 것 같아서 배려차원에 한 대답이었지만, 선생님들에게서 나온 반응은 예상 밖이였다. 오히려 차코에 머물 것이라고 대답한 나를 측은한 표정으로 쳐다 보는 것이 아닌가.
‘pobresito voluntario (불쌍한 봉사단원)’
으힉! 이건 내가 바라던 반응도 아니고, 이런 이미지 생기는 거 딱히 원하지 않았는데. 다들 석달이라는 긴 여름 방학 동안 오리엔딸(파라과이 남쪽의 풍요의 땅)에 있는 자기네 친척집으로 여행 계획을 세우고 있었던 것이다. 휴가 얘기로 행복한 방학에, 일이라니.... 선생님들은 내 대답에서 나를 어떠한 사람으로 까지 생각하고 있을까.... 몇몇 선생님은 나에게 아무리 일도 좋지만, 가끔은 휴식도 필요하다는 고마운? 충고까지 해주었다. 아....나 또한 석달이라는 긴 방학동안 이 건조하고 후덥지근한 차코에만 머물 생각은 아니었는데, 과도한 배려로 인해 일 좋아하는 봉사단원이 되버렸군... 뭐 좋은건가?
그렇게 한창을 떼레레를 마시며, 왁자지껄 아이들처럼 떠드니 여느 때처럼 4학년 꼬맹이가 구세군 종으로 Es hora!!(수업)시간이야!! 라고 외쳤다. 선생님들은 자리에서 일어서서 '오늘은 수업하기 싫어~'하고 한마디씩 하시곤 수업을 하러 들어갔다. 나 또한 주섬주섬 마지막 수업 자료를 챙기고, 마지막 수업인 5학년 교실로 들어갔다.
언제나 그랬듯 인사를 나누고, 5학년 꼬맹이들을 한명씩 한명씩 쑥- 훑어보는데 왠지 모르게 오늘 따라 유난히 더욱 사랑스러워 보인다. 실제로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이들이 더 이뻐진 거 같기도 하고. 기분 탓인가. 이제 곧 방학이라는 사실이 교사가 된 지금도 너무도 설레여서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는 건가 보다. 진짜 사람은 마음 먹기 나름이다. 오늘은 마지막 수업, 그대들이 무엇을 해도 내가 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해 주리라. 한창을 이렇게 양 볼이 터지도록 웃고 있는데, 아이들은 내가 왜 미소를 짓고 있는지 모르면서도, 뭐가 그리 좋은지 생글생글이다.
- 얘들아, 오늘 마지막 수업이야. 그러니깐 오늘은 더욱 열심히 해보자!
늘 우리 저번 시간에 무엇을 배웠지? 라고 말하며, 복습부터 하고 시작했던 수업의 첫 발문과는 달리 오늘은 특별한 날인만큼 신선하게 변화를 주었다. 아이들에게 좀 더 확실한 학습 분위기 환기를 위해 미소와 함께 힘찬 목소리로. 그리고 교실이 떠나갈 듯한 큰 목소리로 울리게 될 Siiiiiiiiiiii(네!!!!!!!) 라는 대답을 기다렸는데.. 어라 그런데 분위기가 조금 이상하다.
‘ 선생님, 오늘 마지막 수업이예요? ’
‘ 이제 미술 없어요? ’
‘ 선생님 계속 미술하고 싶어요! ’
Siiii(네!!!!!) 라는 힙찬 대답은 어디에도 없고, 다들 마지막이라는 사실이 조금은 불안했던 모양이다. 얘들아 이제 방학이라고! 즐겁지 않니? 마지막이라고 들떠있던 내 마음이 무안하게, 아이들은 마지막 수업이라는 말이 조금은 충격이었나 보다. 교실 분위기가 축 가라앉은 것이 내가 상상했던 아름다운 마지막 수업의 모습은 아니었기에, 나는 분위기 환기를 위해 아이들을 달래기 시작했다.
- 얘들아, 이번 학기 마지막 수업이라고 말한거야.영원히 마지막이 아니라 다음 주면 시험 기간이잖니!
애들은 그제서야 조금은 안심한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다음주 시험이라는 사실을 떠올리기 시작하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설마 영원히 빠이빠이 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마지막이라는 단어를 아이들 앞에서 쓸 때에는 조금은 조심해서 써야 겠다는 생각과 함께, 아이들의 표정을 살피기 시작했다. 다행이도 다들 한결 평온한 표정을 짓는다. 다들 표정이 바뀌니 나 또한 괜히 마음이 따뜻해지고, 힘이 난다. 그리고 문득 떠오르는 생각... 나와 내 수업이 사랑받고 있구나 하는 사실에 아이들에게 고맙기까지 하다.
그런데,
‘ 선생님, 그럼 저희가 모은 이 별들은 다음 학기에도 쓸 수 있는 거지요? ’
‘ 저도 많이 모았는데. 와 내년에도 그대로 들어와야 하는거지요? 다행이다. ’
한 동안 아이들의 발언에 감동하고 있었는데, 꼭 이렇게 판을 깨는 녀석들이 있다. 내가 준 칭찬통장을 잘 보이게 열심히 들어보이면서 질문해대는 후안과 페르난도다. 뭐냐. 스티커때문이었니? 아쉬워 했던 것이 내 수업이 재미있어서가 아니라? 순식간에 상황이 판단이 되고, 스티커 별에 나와 내 수업이 졌다는 사실에 조금은 배신감이 들었다. 스티커의 폐단인가.
하지만 오늘은 마지막 수업이라는 사실. 어느 무엇도 나의 기분을 다운 시킬 수 없다. 나는 금방 생각을 고쳐먹었다. 아무렴 어떠한가. 스티커 별 때문에든 뭐든 간에 애들이 내 수업을 기다리고 있고, 또 즐거워 한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그렇게 초긍정 마인드로 나는 다시금 마음을 가다듬고 오늘 수업할 내용에 대해 설명했다.
- 오늘은 우리 모두 예술가가 되어볼꺼야. 지금부터 선생님이 다들 각자에게 유명한 그림이 스케치된 것을 줄테니, 모두 베껴서 그리고 그 위를 색연필로 자유롭게 색칠해보자. 오늘은 쉽지? 얼마나 성실하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꺼야. 오늘은 특별히 스케치를 잘한 사람에게 1개, 그리고 그 후에 색칠을 잘하는 사람에게 2개의 스티커를 주겠어! 오늘은 특별하니깐!
특별하다는 것을 더욱더 강조하며, 열심히 몸짓과 함께 오늘의 과제를 설명하였다. 아이들은 과제보단 오늘 걸린 스티커에 대해 기대가 큰 것 같았다. 평소에 나는 한 활동당 과제를 끝난 아이에게 한해서 스티커 별을 하나를 주었었는데ㅡ, 하나의 과제에 3개의 스티커 별이라니 아이들에게는 로또와도 같았으리라. 갑자기 아이들의 눈빛이 변하더니 쥐죽은 듯이 조용해지며 연필로 그림 그리는 소리만 간간히 들려왔다. 스티커의 힘. 다시금 나보다 훨씬 더 권위 있는 스티커의 위풍당당한 능력에 감탄하고 다음에도 아이들에게 후한 인심을 쓰리라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교실 여기저기를 다니며 아이들이 어떻게 잘 하고 있는지 개관순시 하였다.
여지 껏 활동들은 다 생각하고, 상상해서 디자인하거나 그림을 그리던 과제였기 때문에 애들은 많이 힘들어 했었다. 나는 그림을 통해 아이들의 시야를 넓히고, 창의성을 키워주고 싶었다. 그래서 조금은 무리일 지 몰라도, 생각해봐! 할 수 있어!를 입버릇처럼 아이들에게 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조금 생각하다가 금세 지쳐서는 나에게 자신이 그리다 만 그림을 들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달라고 투덜대기 일 수였고, 결국에는 징징대다가 예시자료를 베끼기에 바빴다. 그런데 오늘의 과제는 공식적으로 베끼는 과제이니 얼마나 마음이 편하겠는가. 선생님에게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불법복제의 시간!!! 거기다 불법복제에 딸린 상품이 무려 스티커 별 3개라니!!! 모두들 신이 나서 과제를 하기 시작했다. 그 많던 투덜거림도, 징징거림도 오늘은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 눈치보면서 조금씩 베끼던 나딸리도 오늘은 마치 종이를 태울 기세로 그림을 그리는데, 대견스럽기도 하고, 그 동안 상상한다고 마음 고생했을 생각에 마음 한 구석이 애잔해기도 했다. 저렇게 그림을 좋아하고 열심히 하는 애들... 생각해보라고 해서....잔뜩 위축되었을테니....
< 초 집중하는 아이들. 아 진짜 단 한명도 딴 짓을 하는 아이가 없다. 조금은 무섭기까지 하다.>
20분 정도 지나자 하나 둘 스케치를 마친 아이들이 하나 둘 씩 자신의 칭찬 통장과 그림을 들고 검사를 받기 위해 나에게 가지고 온다. 허 참 베끼는 실력하나는 수준급이네. 그 동안 볼 수 없었던 스케치 실력에 감탄이 절로 나오는 순간이었다. bueno!(잘했다)는 말과 더불어 칭찬 통장에 반짝 거리는 금색 별을 붙여 주었다. 아이들은 자신의 그림을 칭찬한 것 보다 자기의 칭찬 통장에 색색의 별이 하나 더 늘어난 것이 훨씬 기쁜 모양이다. 몇 번 세어도 똑같을 몇 개되지도 않는 스티커를 계속해서 세어보기도 하고, 몇 몇은 스티커 별에 눈을 못떼고 자기 자리로 들어가다 넘어지기도 하였다. 자슥들 저리 스티커가 좋을까.
그렇게 또 10분 정도가 흐르자, 이번에는 채색도 완성한 아이들이 하나 둘 나타나고, 스티커를 떼서 칭찬통장에 붙여주는 내 손은 더욱 바빠졌다. 옛다 이번엔 2개다! 과제를 완성하고도 시간이 충분히 남자, 자발적으로 다른 그림을 하나도 그리고 싶다고 하는 애들도 나타났다. 스스로 한 개 더 해보고 싶다니. 파라과이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실제로 처음 다른 그림으로 과제를 하나도 해보고 싶다고 말했을 때, 난 내가 스페인어를 잘 못들은 줄 알고 como?(뭐라고?)를 연신 외쳤을 정도였으니까. 베끼기는 아이들들이 계속 해오던 것이라 익숙해서 부담이 덜한가? 예상보다 더욱더 열성적인 적극성에 놀랍다.
어느 덧 끌날 시간이 되었고, 밖에서 구세군 종소리가 딸랑딸랑 들리며, 내 마지막 수업은 끝이 났다. 아 이제야 수업이 모두 다 끝이 났구나. 수고했다 박종환! 수업을 끝내고 쿨하게 아이들에게 인사를 하고, 주섬주섬 챙겨서 나오는데, 애들 몇몇이 졸졸졸 따라 나온다. 미처 검사 못한 과제를 검사맡으려고 오는 것인가? 그러기에는 아이들의 두 손은 비어있었다.
- 얘들아, 무슨 일이야?
수줍은 듯 다가온 세 명의 아이 중에서 가장 친절하게 대답해 줄 것같은 가운데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근데 쭈볏쭈볏 서 있기만 한다. 내가 다시 한번 물어보려고 하자, 뒤에 서있다가 보다 못한 한 아이가 나서 나에게 이야기를 한다.
‘ 선생님, 내 년에도 저희랑 미술 수업 재밌게 할 꺼지요? ’
‘ 선생님 내 년에도 재밌는 수업 했으면 좋겠어요! ’
한 명이 용기내서 말하니 나머지 애들도 용기가 났는지 저마다 자신의 말을 해대기 시작했다.수업 같이 할꺼냐고? 당연하지!!! 애들이 이렇게 즐거워하며 이런 말을 해주니 너무나도 고맙고 대견하다. 사실 초큼 아주 초큼. 감동도 받았다. 그래서 나는 나도 모르게 조금은 흥분해선 그만 소리를 빽하고 내고 말았다.
- 그럼 물론이지!
아이들은 내가 낸 큰 소리에 조금 움찔했지만, 선생님의 대답이 만족스러웠던지 Chau(안녕히 가세요!) 라고 말하곤 깔깔거리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 아이들의 뒷 모습을 보고 있나니 고민하고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밤 늦게까지 스페인어 공부해가면서 수업을 준비했던 하루하루가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준비물 안 가져온다고 한숨 쉬면서 수업을 시작했던 기억, 씨끄럽다고 계속 씨끄럽게 하면 쫓아낸 다고 정색했던 기억, 설명이 제대로 안되서 스스로 답답해 하던 기억, 아이들이 질문을 했는데 못 알아 듣곤 그냥 못들은 척 넘겼던 기억.... 수업 시간에 있었던 이런 저런 수많은 에피소드들도 새록새록 떠올랐다. 아...힘들었었지....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너무나도 웃음나는 귀여운 이야기들이었다. 왜 그땐 그토록 힘들었었는지...
방금 아이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이 모든 고생들이 보상받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네버세이굿~바이! 다시 만날 걸 알기에 웃으면 떠나는 거야~! 요즘 출퇴근 길에 자주 듣는 이제는 월드스타 싸이의 힐링곡이 저절로 입가에 맴돌았다. 왜 하필이면 이 노래인가? 싶다가도 뭐 아무렴 어때 하면서 계속 흥얼거린다.
‘조안 너 아무래도 좋은 일 있는거 같아. 방학 말고도’
마침 지나가던 알미데스 선생님이 한마디 하셨다.
- 오늘 날씨 너무 좋지 않아요?
‘어이! 솔직히 말해봐. 너 여자친구 생겼지?’
메씨를 질질끌고 운동장을 나서는 나에게 선생님은 또다시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나에게 물어보셨다.
- 그럴지도 모르죠. 하하
나는 알 수 없는 장난스러운 여운을 남기고 룰루랄라 하며 자전거를 타고 그렇게 집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끝나갈 이번 학기. 아직은 2주나 남았지만, 이제 조금은 한 학기가 끝나간다는 실감이 난다.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시간에 미련을 두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긴 하지만, 더 열심히 해볼껄 후회도 되고 더 진심으로 부딪혀 볼껄 하며 부끄러워진다. 안타깝다. 마지막이라고 생각되니 생기는 마음의 여유인가. 앞으로 남은 날이 더 많음에도 지나간 3달이 왜이렇게 아깝고 애틋한지...돌아보니 급 아쉬워진다.
이래서 다들 이런 말을 하나 보다.
마지막은 즐겁기만 할 수 없어 어떻게든 아쉬운 거야.
< 유명한 디자인 그림을 베껴 예술가가 되어 보는 감상 수업. 5학년 치고 진짜 제법이다! :-) >
< 카렌. 모든 일이 열심히 하는 카렌은 어떤 과제가 나와도 거뜬히 제 시간안에 끝낸다. >
<그래, 그렇게 가끔은 집중하더라도 슬며시 미소를 보여줘. 선생님 긴장 안하게...ㅎ>